다채로운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

 

그 사이 우리들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통과해왔다. 죄책감의 골짜기를 지나 분노의 거친 산을 넘고, 발목까지 빠져드는 슬픔과 우울의 늪을 지나왔다.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감정들의 뿌리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이런 감정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없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감정들이기도 하기에 하나씩 짚어보았다.
이제 그동안 제시되었던 감정들을 마치 지나온 시간을 담은 사진들을 열어보듯, 하나씩 되짚어 보자.
죄책감은 너무 무거우면 주요우울장애와 같은 병적인 증상의 한 부분일 수 있지만, 응당 죄책감을 느껴야 할 순간에 죄책감이란 감정의 문을 닫아버린다면 내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해야 할 행동과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배우고,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내 자리를 매김 할 수 있다. 또한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로 크게 한 걸음 내딛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죄책감에 너무 푹 절어버린다면 아예 오도가도 못 하는 상태가 되어 삶이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 과정 가운데 내 마음이 경험하는 지나친 채찍질은 말할 것도 없다.
분노는 또 어떤가. 화를 내는 게 맞는 상황들이 있다. 모두의 공분과 의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다. 아니라는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화를 내야 하는 순간도 존재한다.

슬픔의 긍정적 기능

그러나 사람을 정서적으로 만드는 온갖 빛깔의 감정들이 불편하고 어려워서 분노라는 뚝뚝한 감정 하나로 다른 모든 것을 대신하려 든다면 그건 분명히 큰 문제가 된다. 슬플 때 화를 내고, 괴로울 때 화를 내고, 겁날 때 화를 내고, 사랑할 때 화를 낸다면, 자신에게도 최악이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감당이 안 되는 분노 때문에 살아남기가 힘이 든다. 
슬픔과 우울은 어땠나. 슬플 때 흘릴 눈물이 있다는 것은 내 감정을 담아낼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을 배려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상황이 못 견디게 괴롭고 실망으로 마음이 무너질 때 슬픔을 통해 내 안에 쌓인 아픔과 고통을 밖으로 내어보낼 수 있으니까. 슬픔으로 가득 찬 마음은 어떤 위로의 손길도 무감각하게 느끼도록 만들곤 한다. 슬퍼하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쌓인 슬픔을 흘려보내면 내 손을 잡아주는 상대방의 손이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퍼낼수록 더 고이는 깊은 우물처럼, 덜어내면 오히려 더 차오르는 병적인 슬픔의 상태는 우울로 따로 다루어야 한다. 우울은 지극히 깊은 슬픔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가 증식성을 갖는 병적인 상태의 마음이다. 이 단계에 들어가면 자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벗어나기가 정말 어렵다. 적당히 슬픈 상태여야 그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우울이라는 병적 감정 상태에 깊이 들어가 버리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다든가, 가벼운 운동을 한다든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정도로는 회복이 될 수 없다.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

이러한 감정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떠올릴 수도 있고, 심금을 울리는 시구를 들먹일 수도 있고, 감정 현상을 유발하는 우리 뇌의 작동을 설명하려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듯 다양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우리를 만드신 그 분은 처음에 우리를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디자인하셨다. 그리고  이 감정들로 인해 다채롭고 풍족히 누리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셨다.
앞에서 하나씩 살펴보면서 지나온 부정적인 감정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음식에 소금을 넣듯 적절한 조절이 감정에도 요구된다. 모두가 다 요리사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소금범벅이 된 음식이나 전혀 간이 되지 않은 밍밍함을 견뎌야 할 필요는 없다. 감정을 계획하시고 신묘한 몸의 작동을 통해 감정을 경험하며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안하셨던 그분의 바람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문지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미소의원 원장이다. 월간 <건강과 생명> <새벽나라>에 상담 코너를 집필하고, <십대답게 살아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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