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길목

목사로 산 지 7년차 되던 1992년 겨울,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동두천 ‘두레방’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성탄절 예배를 드리라는 교단 본부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모습일까? 반겨줄까? 어떤 노래를 부르지? 무슨 말씀을 전할까?’ 그렇게 두레방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친구가 된 두레방 언니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찬송으로 부른 동요 ‘섬 집 아기’를 부르며, 눈물로 하나가 된 우리, 그렇게 친구가 되어 갔습니다. 마음을 열고 목사를 친구를 맞아 준 두레방 ‘언니’들의 사랑은 깊고 넓었습니다. 그 사랑과 의리와 정에 매여, 두레방을 섬긴지 어언 19년, 이제 두레방 센터도 스무 다섯 돌을 맞이했습니다.

여러 얼굴들이 생각납니다. 문혜림 선생님, 이성혜 장로님, 유영님 원장님, 여러 활동가들, 기장 여신도회 어머니들, 한신 후배들, 이화여대 학생들, 자원봉사자들, 그 얼굴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분들의 기도와 땀이 오늘의 두레방을 만들었습니다.

5년 전, 두레방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나와 부엉이’를 다시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두레방 언니들이 미술 치료 시간에 그려 놓은 그림들을 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민족 분단의 아픔을 온 몸으로 지고 가는 희생양들의 삶이 너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서러움 속에 자꾸 늙어 가시는 두레방 언니들의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서글퍼서 울었습니다.

이제 그만 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레방 언니들과 그 자녀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땅 민중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더덩실 춤을 추며 지금 여기 이 땅에서 언니들과 함께 천국을 살고 싶습니다.

 

희망은 바로 여기에서

두레방 사역 20년 동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희망이란 이름의 바깥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못 났어도, 아무리 냄새나도, 아무리 지겨워도, 우리의 희망은 바로 여기, 우리 안에, 우리의 절망을 거름삼아, 싹이 나고 자라고 있음을, 저는 두레방을 섬기면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찌들고 지친 언니들의 가슴 속에서, 그러나 의리 있고 속 깊은 저들의 사랑 속에서, 희망은 자라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의정부 우리 동네에서 미군 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아예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으면 제일 좋겠는데, 다시 평택으로 간다고 하네요. 그런데 미군 부대를 떠나보내는 우리 동네의 고민이 서럽습니다. 미군 부대를 맞아들여야 하는 저 동네의 고민도 참 복잡합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러나 그렇게 고뇌하고 싸우는 그 상처 밑에서, 새 살이 돋듯, 다시 희망이 자라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두레방에서 길을 물어야 합니다. 두레방 여성들과 자녀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대신, 두레방에 들러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두레방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일하고 계신 두레방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레방에서 만난 그 분의 손을 잡고, 우리 함께 구원과 해방의 길을 내며,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길에 여러분 모두 동행해 주실 것을 믿으며, 두레방이 필요 없는 그 날을 함께 꿈꾸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대가 우리 시대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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