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의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

무슨 이런 곳에 교회가 있나 했습니다. 길은 잘 나 있는데 마을은 보이지 않고, 둔덕길을 넘으니 휑하니 교회가 나타납니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느낌, 알고 보니 한센 정착 마을이었습니다. ‘나눔 선교회’ 콘서트가 찾은 작은 교회입니다.

시작을 알리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트럼펫 연주가 끝났습니다. 웬일일까, 박수가 없습니다. 잠깐의 고요가 깊은 말이 됩니다. 교우들의 얼굴이 흑백사진 같습니다. 어떤 아픔들이 반응을 쑥스럽게 했을까? 제 순서가 끝나고 특별 순서로 어떤 선교사님이 나오십니다. 선교사님의 손이 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한 손이 뭉그러져 있습니다. ‘복음 비둘기 우리들 선교회’란 이름으로 한센인을 위해 사역하시는 정효중 선교사님이십니다.

 

 

 

사랑의 끈

선교사님은 10대 때 상처가 낫지 않아 나병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한센병’이라 부르지만 그땐 ‘나병’이란 천박한 단어로 불렸습니다. 당시 선교사님은 하늘과 땅이 맞붙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절’이라는 끔찍한 단어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친구와의 단절, 동네와의 단절, 부모와의 단절, 행복한 인생과의 단절…. 그래서 “나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도 억 겹의 슬픔이지만, 자신으로 인해 부모와 가족들이 겪을 슬픔은 가슴에 피멍 드는 일이었습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그저 당해내야만 하는 산지옥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소록도는 죽어도 못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73년 2월 2일 죽으려고 소록도에 들어가셨답니다.

그런데 소록도에서 놀라운 광경을 봅니다. 한센병으로 눈도 없고, 손도 발도 없는 분들이 찬송하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순간,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사치스럽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 후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라는 말씀이 영혼의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보다 더 어려운 분들의 눈이 되고 지팡이가 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8년에 소록도를 떠나 지금의 한센마을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정착 이후, 양계장과 양돈업을 하셨는데 ‘화불단행(禍不單行, 나쁜 일은 몰려온다는 의미)’이라는 말처럼,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교통사고로 갈비뼈 여섯 개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또 양계장에 불이 나서 다 타 버리고, 태풍 셀마에 그나마 남은 모든 재산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소록도를 떠난 25년의 세월은 한마디로 폭풍 속의 나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세아서 11장 4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지금껏 자신을 사랑의 끈으로 엮어서 끌고 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센인을 위한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지난날을 회고해보니 사업을 망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감사한지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한센인이 한센인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다면 이미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 이유가 세 가지나 된답니다. 첫째는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음이고, 둘째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이고, 셋째는 꼭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서지요.”

그리고 선교사로 헌신하던 날 밤에 눈물로 쓴 찬양 가사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니 부모형제 멀어지고/ 예수님이 붙드시니 친구들도 다 떠나고/ 성령님이 인도하니 세상부귀 부럽잖네./ 쓸모없는 죄인 나를 주님 불러 사명주니/ 그 은혜에 감격하여 목숨 바쳐 충성하리…

주 하나님 나의 주여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허물 많고 죄악 많은 사고무친 죄인 불러/ 천금보다 귀한 사명 종의 직분 주셨으니/ 하나님의 오른팔로 능력 있게 붙드시어/ 맡긴 사명 감당토록 나를 잡아 주옵소서.

- ‘하나님이 부르시니’(작사-정효중, 작곡-김성덕)

 

 

 

견디는 만큼…

다른 병에 걸려 나으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만, 한센병은 치료가 되어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편견과 오해 때문이지요. 이제 우리나라의 한센병은 1년에 10여명 정도가 걸릴까 말까 하는 드문 병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센인들과 그들의 자녀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인권에 관한 사회적 치료가 시급하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 무서운 영적 나병균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편견과 오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류는 편견과 오해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신음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도 남을 만한 놀랍고도 아름다운 가능성들이 편견과 오해로 인해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요?

하나님은 구부러진 막대기를 가지고도 바른 선을 긋는데 사용하시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에 육적 장애를 허락하심은 영적 장애인 우리를 치료키 위함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돌아보면 선교사님의 폭풍 같았던 지난날의 삶은 선교사님의 영적 바다를 정화시킨 것이지요. 맞닥뜨린 일에 대하여 마음이 넓으면 추억이 되고, 마음 좁으면 원망이 되지요. 세상이 마냥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희망 선교사님이 되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제 한센인의 마음을 알아 그들 마음에 아름다운 천국 꽃을 피우길 꿈꾸시는 정효중 선교사님은 동남아시아의 한센인들을 위해 남은여생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려 합니다. 그 사역의 여정이 시인 신달자님의 노래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견디는 만큼/ 향기 더하지요/ 이렇게/ 향기로 퍼지는/ 종말이기를.

- ‘잎차 한잔’ 중

 

 

 

찬양사역자. 그는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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