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경비로 교회 개척헌금 드린 어머니 가르침

목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목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요. 예배와 말씀을 준비하거나, 상담의 내용을 준비하거나, 혹은 위기 상황에 처한 분을 위해 기도해 드릴 수 있는 영적 힘을 비축해야지요. 그러므로 목사가 사람을 만날 때면 늘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만나는 모든 이들을 목회의 상대로 보는 거죠. 이 말은 목사가 다른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그런 목사에게 마음의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지요.
2001년 9월 2일, 서울 대치동 동광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은 후, 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저에게 큰 감동을 주는 한 가족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가정의 두 아들은, 장로와 집사의 직분을 맡아 동광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형 장로님과 동생 집사님의 신실한 모습이 동광의 하늘 가족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분들인데요, 이 가정엔 특별한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 붙은 잔칫날, 잔치를 크게 베푸는 대신, 그 경비를 하나님께 봉헌하는 전통입니다.
어머니 권사님의 칠순 잔치라고 들었습니다. 그땐 제가 동광교회를 섬기기 전이라 직접 뵙진 못했지만, 어머니 권사님이 자녀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내 칠순 잔치를 따로 차리지 말라. 대신 너희들이 마음 가는대로 돈을 모아 나에게 다오. 내가 할 일이 있다.” 자녀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돈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기금으로 봉헌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는 지금도 건강하고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권사님,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의 아름다운 믿음이, 손자 집사님에게 대물림되어 최근에 또 하나의 감동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앞에 소개한 아들 장로님의 아들, 그러니까 권사님의 손자 집사님인데요, 그 손자가 장가를 들어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의 돌이 다가온 어느 날, 손자 집사님 내외가 제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딸의 돌잔치를 크게 하는 대신, 그 돈을 좋은 일에 봉헌하고 싶다 하면서, 봉투를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할머니 권사님을 생각하며, 함께 손을 잡고 눈물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부 집사님이 돌아간 후, 저는 두 분의 뜻을 따라, 돌 전후의 아이 가운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연락을 해보았으나, 적절한 아이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제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목적헌금을 목적 이외의 곳에 사용할 수도 없어, 꾹 참으며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희년의 집’이란 선교단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찾으시던 적절한 아이가 있다는 전갈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셋째로 태어난 딸아이인데,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와 인큐베이터에서 한동안 지내야 할 뿐만 아니라, 심장 계통이 약하여 매우 고가의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우린 그 아이를 돕기로 하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 아이는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여 집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일전엔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두레방 돕기 기금모금 공연, 담쟁이의 꿈’에도 참석하여, 기쁨의 상봉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난 두 아이는 주 안에서 자매가 되었고, 두 가정은 한 하늘 가족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토록 귀한 감동을 나누면서도, 목사로서 참아야 하는 한 가지 힘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동의 주인공들이 한사코 이 일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여 지금까지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인데요, 이번 기회에 <아름다운 동행>지에, 익명으로나마 전할 수 있어 매우 행복합니다. 이 아름다운 가정에 늘 주님의 은총과 평강과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빌며,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주시는 독자들께도 문안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장빈
동광교회 담임목사이며 <사도신경여행><새벽에 떠나는 62일간의 느헤미아 여행> 등의 저서를 펴냈다. 문화사역자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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