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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가?
분노와 폭력이 아닌, 눈물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117호] 2011년 10월 23일 (일) 옥명호 @

[시네마레터] <인 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

듬성듬성한 초목을 뽑아낼 듯 모래바람이 세차게 부는 황량한 사막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전이 계속되는 아프리카의 전장(戰場), 얼기설기 천막으로 지어진 난민촌 풍경은 모래처럼 푸석거립니다. 그 땅에 파란 눈의 이방인 의사 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래바람이 실어나르는, 내전과 폭력의 희생자들을 쉴틈없이 돌보고 치료하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화면은 바뀌어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고즈넉하고 목가적이기까지 한 북유럽 덴마크의 어느 소도시를 보여줍니다. 이곳에는 전혀 상반된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가는 두 소년이 있습니다. 분노와 적의를 감추고 누구든 자기를 괴롭히며 보복과 응징으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크리스티안과, 학교의 왈패들에게 일상적인 이지메(괴롭힘)와 폭력에 시달리는 심약한 엘리아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두 개의 세계
내전이 이어지는 아프리카의 난민촌에서 구호 활동을 펴는 의사 안톤. 황량한 사막과 바람의 한 가운데서 피의 폭력을 의술로 뒷수습하는 게 그의 일입니다.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라 ‘태아 성별 알아맞히기’ 내기를 벌이는 반군의 참혹한 폭력이 난무하는 난민촌과, 별장을 두고 있는 덴마크의 자기 집 사이에서 안톤은 얼마만큼의 괴리를 경험할까요.
안톤이 오가는 두 세계, 곧 아프리카의 전장이나 덴마크의 한적한 소도시는 그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서로 판이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장의 폭력과 일상의 폭력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방식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덴마크로 돌아온 안톤은 어느 날 아들 엘리아스와 엘리아스의 친구 크리스티안이 보는 앞에서 수치스런 폭행을 당하면서도 물리적으로 저항하거나 법에 고소하지 않고 철저히 비폭력 대응으로 일관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엄마가 나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한 아빠의 말을 믿었건만, 엄마는 크리스티안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때부터 크리스티안은 아빠가 자기를 속였고 엄마를 죽게 내버려두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아빠에 대한 불신과 증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세상을 향한 분노로 뒤틀립니다. 런던에 살다 덴마크의 외할머니 집으로 이사 온 크리스티안은 하굣길에는 엘리아스를 돕다가 자신도 농구공에 맞아 코피를 쏟습니다. 어느 날 화장실까지 쫓아가 엘리아스를 괴롭히던 왈패의 우두머리를 크리스티안은 자전거 공구로 흠씬 패고 숨겨온 칼로 위협합니다. 다신 손대지 말라고, 안 그러면 죽여버리겠다고.
엄마 잃은 슬픔과 외로움, 분노로 가득한 크리스티안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어섭니다. 그의 복수는 한층 더 대담해지고 강도가 세집니다.
엘리아스는 유약하고 도무지 폭력을 모르는 아이입니다. 등하굣길에 자신을 수시로 괴롭히고 일쑤 자전거 바람을 빼놓는 학교의 왈패들에게 속수무책 당하기만 합니다. 비폭력 무저항이 아니라, 무행동 무기력 그 자체인 셈이지요. 늘 당하기만 하던 그에게 폭력에 대한 크리스티안의 대응 방식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더 강도 높은 폭력으로 되갚는 크리스티안의 보복을 직접 목격한 엘리아스는 그를 우러러보는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안톤을 폭행한 사람의 차를 사제 폭탄으로 폭파해버리자 크리스티안의 대담한 계획을 듣고는 엘리아스는 고민에 빠집니다.

‘더 나은 세상’은?
아프리카 내전의 현장과 덴마크의 한적한 소도시를 넘나드는 영상의 그 선명한 대비는 우리를 당혹케 합니다. 그러면서 먼 아프리카 땅의 폭력은 잔인하게 여기면서, 정작 일상의 작은 폭력(당하든 저지르든)은 너무 쉽게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내전이 판치는 땅 못지않게, 폭력과 증오와 복수(심)는 우리 일상 어느 곳 어느 때에나 돋아나는 독초 같아서 캐내거나 뿌리 뽑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톤과 엘리아스와 크리스티안이 바라는 ‘더 나은 세상’(a better world)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이 세상과 자신의 삶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나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날 즈음, 크리스티안이 자신을 향한 극단적 폭력, 곧 자살을 버리고 안톤의 품 안에서 눈물을 쏟는 장면이 오래 가슴에 남은 건 그 때문입니다.

<인 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 2010년작, 6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83회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
주연 | 미카엘 페르스브란트(안톤), 윌리엄 요크 닐센(크리스티안), 마르쿠스 리가르드(엘리아스), 트리네 뒤르홀름(마리안느)
감독  | 수사네 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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