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낙엽이 지는, 해질녘 노을이 고운 이 놀이터, 이곳에 음악이 울려 퍼지면 어떨까? 이곳에서 사람들이 선해지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파트에서 조그만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어느 원장님의 생각입니다.
그날 밤 원장님은 남편에게 “놀이터에서 무슨 행사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남편도 많은 생각이 있었는지 마음을 나눕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건네기가 머쓱하고, 모두들 몇 층인지만 확인하고, 아파트 문이 닫히면 모두들 자기들 세상으로 들어가고, 자기 집과 자기 아이만 아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조각난 공동체... 반상회도 잘 되지 않고 소통 부재가 일상이 되어 버린, 낯선 바람만 부는 도시의 빌딩숲... 그런 도시의 빌딩숲에 훈훈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는데...”
그날 부부는 놀이터에서 자그마한 음악회라도 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 분께서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우리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음악회라도 열면 어떨까 하는데, 집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 질문에 저는 밀양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년 해오고 있는 ‘단풍나무 콘서트’가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출연진이나 관객이나 모두 서먹하고 어색한 공연이었지요.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이웃 학교들과 마을 주민들 그리고 수많은 출연진들로 청년처럼 든든하게 자라난 ‘단풍나무 콘서트’가 되었지요.
저는 그 분의 말에 작은 꿈을 꾸었습니다. 도시의 빌딩숲 그 사이에 조그만 놀이터... 그곳에서 희망의 노래가 늘 울려 퍼지고, 그 빌딩숲에 맑은 새소리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친구가 되어 평화의 아침이 열리는 그런 꿈...
저는 그 분에게 ‘단풍나무 콘서트’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잘 만들어 보고 싶다고 얘기 했지요. 이름은, ‘놀이터 작은 음악회’. 때는 ‘낙엽지고 노을 지는 가을 저녁’. 장소는 ‘어린이집 앞 놀이터’.
그렇게 올해로 제3회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3년 전 첫 해 땐 손수 만든 작은 무대와 몇 안 되는 출연진 그리고 서른 명쯤 되는 관중들과 함께 ‘평화의 아침’을 부르며 마무리했습니다.

평화의 아침은 오리라/ 평화의 아침은 오리라/ 모든 사람이/ 비로소/ 친구로 여겨지는 날,/ 평화의 아침은 오리라
(좋은날풍경 2집 ‘그날 새 세상’ 수록곡)

지난해, 제2회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그날은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런데도 공연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어떤 아이는 공연 내내 울기만 하고, 어떤 아이는 공연 중 엄마만 찾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공연이 되었습니다.
특별출연이 있었습니다. 음악대학교 성악과 교수님의 오셔서 아름답고 화려한 무대를 수놓아 주셨습니다. 주민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앙코르를 하시는 교수님의 얼굴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작고 초라한 무대에서는 처음이시겠지...’ 그럼에도 뭐라 말할 수 없는 어떤 울컥함이 있어 보였습니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따뜻한 감동입니다.
저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강아지 똥’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부르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아 길을 가다/ 강아지 똥 보거든/ 더럽다 침 뱉지 마라/ 그 똥은 민들레 밥이다
(좋은날풍경 2집 ‘그날 새 세상’ 수록곡)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관객들은 서로 어깨를 가까이 하며 하나로 묶였습니다. 관객들도 80여 명 이상 오셨고, 조명도 더 좋아졌고, 출연진들도 더 열심히 준비한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제3회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이제 ‘단풍나무 콘서트’ 같이 어엿한 청년의 모습으로 잘 자라났습니다. 예년과 달리 무대 위치를 옮겼는데, 모든 면에서 훨씬 규모 있어 보였습니다. 관객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대략 120여 명 정도 오셨는데,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을 만큼 놀이터가 가득 찼습니다. 인근 아파트에서도 몇몇 분이 구경하러 오셨고, 다른 어린이집 원장님도 몇 분 오셔서 함께 했습니다.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이 무대에 올라 아카펠라로 노래를 했습니다. 익숙한 노래였습니다. 해맑은 목소리의 ‘강아지 똥’이였습니다. 저에겐 선물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나와서 ‘어머니의 기도’라는 노래를 중창으로 불렀습니다. 빌딩숲에 울려 퍼지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놀이터는 일순간 조용해지고, 감동이 모두의 마음에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동감, 공감, 절감...

오, 하나님 내 아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오, 하나님 내 아이가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오, 하나님 내 아이가 남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주님 내 아이를 붙드소서.
오, 하나님 내 아이가 기도하며 살 수 있도록/ 오, 하나님 내 아이가 찬양하며 살 수 있도록/ 오, 하나님 내 아이가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주님 내 아이를 붙드소서.
오, 하나님 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오, 하나님 내 아이가 주를 사랑할 수 있도록/ 오, 하나님 내 아이가 주를 따라 살 수 있도록/ 주님 내 아이를 붙드소서./ 우~ 우~ 어머니의 기도는 능력이 있네~~
(‘어머니의 기도’ 오은실)

그날 저는 공연을 끝내고 남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이터에서 벌어진 작은 음악회가 서서히 빌딩숲에 아름다운 소리로 스며들게 하신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주민들로부터 어린이집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고 합니다. 입주민 회의 때 ‘놀이터 작은 음악회’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공연을 작은 어린이집에 맡기지 말고 우리가 하자고 그랬더니, 누가 총 지휘할거냐는 질문에 그냥 어린이집에 맡기자고, 대신 필요한 비용과 인력은 우리가 지원해 주자고...
참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원장님은 계속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놀이터에서 엄마, 아빠가 서로 모여 인사 나눔이 자연스러워졌어요. 고급 아파트일수록 어린이집이 아파트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저희 어린이 집은 그런 면에서는 점수를 많이 딴 것 같아요. 아이들을 핑계 삼아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어린이집을 꿈꿨는데 그 꿈이 점점 실현되어 가는 것 같아요. 설문 조사를 했는데, 주민의 100%가 내년에도 꼭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으면 좋겠고, 입주민 중에 음악 전공자나 전공을 하려는 자녀들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입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기회와 방법을 몰라서 늘 안타까워했는데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그 일을 톡톡히 해내고 있어서 참 좋다는 얘기도 들려 왔어요. 어린이집 아이들 부모들이 많이 친해졌어요. 서로 격려하고 칭찬이 넘쳐요. 아이들 키우면서 외부에 나가 문화를 느낄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외부에서 찾아와 주니까 고마워했고요. 마음이 착해지고 맑아지는 것 같았다는 얘기도 들려 왔어요. 일 년 동안 ‘놀이터 작은 음악회’를 기다리신 분도 있었고, 우리 아파트 자랑과 자부심도 생겼다는 분, 어린이집의 신뢰도가 커져서 우리 애를 맡겨도 되겠다는 얘기, 이런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냐며 정서적인 욕구를 채워줘서 고맙다는 얘기, 음악회 덕분에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을 읽었다는 얘기, 아이 엄마들이 서로 친해져서 교회에 등록했다는 얘기 등 훈훈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어요.”
저는 ‘놀이터 작은 음악회’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작아서 큰일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훌륭한 일은 할 수 있다고. 이런 ‘놀이터 작은 음악회’가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곳곳마다 많이많이 생겨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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