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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도를 타고 오르는 게 삶입니다
지금 맞닥뜨린 고통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116호] 2011년 10월 09일 (일) 옥명호 @

   

* <소울 서퍼>(soul surfer), 안나소피아 롭(베서니 해밀턴), 데니스 퀘이드(톰 해밀턴), 헬렌 헌트(셰리 해밀턴) / 션 맥나마라 감독. 2011년 서울기독교영화제 개막작. 전체관람가

“이게 어떻게 신의 계획일 수 있죠? 이해가 안 돼요!”
프로 서퍼(파도타기 선수)를 꿈꾸던 열세살 베서니가 한쪽 팔을 잃은 뒤 묻습니다. 친구와 함께 파도타기를 연습하다 상어에게 물려 과다출혈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의사가 “살아 있는 기적”이라 불렀던 베서니에게 닥친 비극적 현실을 누군들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라며 반문할 때, 아버지 톰이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하와이 해변에서 태어나 바다와 파도가 엄마 품처럼, 침실처럼 편안한 베서니에게 프로 서퍼는 자연스런 꿈이었습니다. 하와이 주 청소년부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그에게 주 결선대회 입상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아무도 원치 않은 사고가 터졌습니다. 천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한 팔로 할 수 없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과일 하나를 썰거나 깎는 일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어깨의 상처가 아물어갈 무렵, 베서니는 다시 서핑 보드를 들고 바다로 나갑니다. 바다로 나가는 게 두렵지 않냐는 친구의 물음에 베서니는 담담히 말합니다. “그건 두렵지 않아. 서핑을 못하는 게 두렵지.”
한 팔로 파도타기를 하는 건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균형을 잡고 서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이 파도 속으로 곤두박질 쳤을까요. 그러나 파도타기는 그저 서핑 보드 위에 얌전히 서 있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휘몰아치는 파도 위를 솟구치거나 방향을 급선회하고, 파도의 끝자락을 뚫고 나오는 속도와 힘이 요구됩니다. 그뿐인가요? 파도가 몰려올 때 두 팔로 헤엄쳐 나가 다른 서퍼들보다 먼저 파도에 올라타야 합니다. 두 팔의 경쟁자들에 맞서 베서니는 한 팔로 이 모든 걸 해내야 했습니다.
결선 대회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실의에 빠진 베서니는 교회 청소년부 담당사역자의 제안으로 당시 동남아시아를 휩쓴 쓰나미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베서니는 공포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서핑 보드에 태우며 밝은 웃음을 찾아줍니다. 쓰나미 현장에서 돌아오자, 베서니를 기다리는 건 뜻밖의 편지더미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그의 결선 대회 방송을 보고 격려와 찬사의 글을 보내온 것이었지요.
대회는 분명 탈락했지만 그 도전만으로도 장애와 고통을 지닌 전 세계의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노라는 편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그 순간 베서니는 깨닫습니다. 두 팔이 온전할 때보다 지금처럼 한 팔밖에 없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을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베서니는 더 이상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묵묵히 매진합니다. 서핑 대회에 다시 도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 팔 가진 서퍼 베서니의 도전은 어떻게 될까요?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지만, 해석은 뒤를 향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현재의 순간을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통의 이유를 우리는 당장 알지 못합니다. 이유를 알지 못할 때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앞을 향해 계속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반지의 제왕>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반지 운반자’의 소명을 부여받은 프로도에게 절대반지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자 시시각각 벗어나고 싶은 고통이었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수시로 목숨을 위협하고 심지어 믿었던 동료조차 절대반지에 눈이 멀어 자신을 해치려 하자, 그는 슬픔과 회의에 차서 반문합니다.
“왜 이 반지가 나에게 왔을까? 이 반지가 나에게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고통스런 일이 닥쳤을 때, 원치 않는 사건 앞에서, 우리 또한 프로도처럼 되묻습니다. 베서니처럼 몸부림칩니다. 이유를 안다 한들 달라질 건 없음에도 그 순간 어느 누구에게든 따져묻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반문하는 프로도의 귓가에 간달프의 목소리가 울려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하는 것뿐이다.”
파도 속으로 수없이 곤두박질하면서도 다시금 파도를 타고 오르는, <소울 서퍼>의 십대 소녀 베서니가 그걸 제대로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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