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세우는 사람들 이야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 없이 살던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는 것을. “든 사람 자리는 잘 몰라도 난 사람 자리는 크다” 했다고,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은 그 무언가를 겪어본 적이 있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사)한국알트루사는 나와 모람(‘모인 사람’의 줄인 말. 알트루사에서는 회원을 ‘모람’이라고 부른다)들로 하여금 우리가 얼마나 나와 다른 사람의 ‘느낌’을 무시한 채 산송장처럼 무감각하게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마치 교회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배우듯이, 우리들은 알트루사에서 사람이 몸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배운다.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를 목표로 삼아 정신건강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는 알트루사는 여성단체인데, 모람들이 이곳을 찾게 된 사연이 참 다양하다. 전업주부로서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며 무탈하게 잘 살아왔는데 예순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설거지를 할 수 없게 되어서 찾아오신 할머니, 남편과 도저히 같이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이혼을 생각하며 온 주부, 아이를 키우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온 아이 엄마, 연인과의 교제가 맘처럼 되지 않아서 온 아가씨, 논문이 써지지 않아서 온 대학원생 등, 나이와 처지가 다 제각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뭔가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해서 왔는데 와서 보니 마음이 고장 나서 그랬음을 발견하게 된 이들이라는 점이다. 개인 상담이나 집단상담, 심리학교실 시간뿐만 아니라 같이 모여 밥을 먹고 계간지 <니> 발송 작업을 하면서도 모람들은 언제고 함께 얘기를 주고받는다. 얼핏 보면 여자들이 늘 그렇다고 여겨지듯, 모여서 수다나 떠는 곳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화의 내용이 다르다. 아이들을 어느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누구네 누구가 스펙이 어떤지, 어디 아파트 혹은 어느 브랜드의 가방이 좋은데 그게 얼마라는 그런 얘기들이 아니라, 각자가 어제 오늘 어떻게 느꼈는지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은지 함께 생각해보는 대화를 나눈다. 왜 나는 남편이 나에게 집안일에 좀 더 신경써달라고 하면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아가 치밀고 잡아먹을 듯이 싸우게 될까, 왜 나는 조금만 아픈 일이 생겨도 몸이 아픈 것보다 겁이 너무 나서 죽을 것만 같을까, 왜 나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게 싫고 매번 비슷한 패턴을 거쳐 직장을 옮기게 될까, 와 같은 이야기들.  
“뭐야, 결국 수다일 뿐이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라고 누군가가 비아냥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마음이 어떻게 아픈지, 왜 아팠는지 하는 그런 시답잖은 얘기가 험한 세상 사는데 무슨 쓸모가 있다는 말인가. 괜히 마음만 약해지지.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말로 그런 느낌들을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나의 느낌에 공감을 얻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달리 살아진다. 알트루사에 와서 ‘느낌’을 나누는 걸 배우고 나니 비로소 ‘살맛이 난다’고 말하는 모람들을 많이 봤다. 알트루사에 다니고 나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순식간에 잘 풀리기 시작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힘든 일들이야 여전히 많지만, 나와 다른 사람의 느낌을 배려하며 순간순간에 반응하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전쟁터에서 싸우듯 혼자 애쓰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고백들이다. <에밀>이 보여주는 삶과 같이, 단순히 숨만 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그 느낌을 주고받으면서 살려고 알트루사에서 모람들은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체험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다른 이의 간증은 듣기 거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허나 간증하는 이들의 마음의 그러하듯이, 나도 그저 알리고 싶다. 알트루사에 와서 마음과 느낌에 눈 뜨고 나니 그걸 몰랐던 때의 시절의 삶이 얼마나 헛헛했는지를 시리게 느끼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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