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불어오는 바람이 달라졌습니다.
키보드로 '돌아보기'를 친다는 게, '졸아보기'로 잘 못 쳤습니다.
“ㄷ”바로 옆에 “ㅈ”이 있어서 실수가 가깝습니다.
그런데, '졸아보기'가 제 삶과는 무관하지가 않아서 생각해봅니다.
마음의 보자기를 바닥에 펼쳐 깔아 봅니다.
거기에 모든 마음의 상처들과 산적한 아픔들을 쏟습니다.
눈물꺼리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모든 원수 같은 것들을 쏟습니다.
그리고 보자기를 쌉니다. 큰 보자기가 됩니다.
그 보자기의 이름은 “기쁨”이라 붙여 봅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불어온 바람은 늘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다스리시는 분이 사랑이시기에
오히려 감사의 노래가 제 마음으로 포월합니다.


불어라 바람!
너로 인해 새봄을 꿈 꾸었노니
너로 인해 한 시절 더욱 푸르렀고
너로 인해 한 시절 더욱 고았노니

불어라 바람!
이제 너를 타고 새처럼 날아도 보고
떠밀려 아이처럼 뜀박질도 해 보리니

불어라 바람!
네가 데려다 주는 곳
그곳에 나 잠잠히 썩어져
곱다시 거름이 되리니

불어라 바람!         
불어라 바람!

(좋은날풍경 _ 가을 잎새의 노래)   

바람은 성숙에 이루고 성숙은 견고를 이루고
견고는, 시간으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합니다.
평안은 현상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깊은 슬픔이다

큰 슬픔만이 작은 슬픔을
가만히 어루만질 수 있다

병을 치유하는 것은 약이 아니고
고통만이 병의 뿌리까지 스며들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길어 올리듯

깊은 슬픔만이 이 슬픔을 소생시켜
다시 희망 쪽으로 나아가게 한다.

(슬픔의 힘)


웅장한 산은 깊은 골짜기와 큰 눈물샘을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답다던 어느 시인의 노래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영혼의 꽃은 살과 뼈를 다 녹이는 슬픔의 밭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지상의 슬픔은 영혼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예배는 생활 끝에 있고, 찬송은 아버지의 노래 속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영혼의 꽃을 위해 이제 삶이 바뀌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솟아오릅니다.
내용이 형식이 되고, 형식이 내용이 되었으면..
10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며칠 전 산책길에 순간, 나무에 꽃이 핀 줄 알았습니다.
벚나무에 깃든 단풍이었습니다. 얼마나 고운지, 가을이 짙어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지상에서의 삶…. 천상에서 영원히 그리워할 나날….
나는 지금, 나의 영원한 그리움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작은 꽃나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상을 지나는 천상의 순례자입니다.
슬픔의 땅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심어 영혼의 꽃을 피우는 자들입니다.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정희 _ 상한 영혼을 위하여 中)

고정희님의 고백처럼 아름다운 작정과 결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존재의 이유가 사랑의 눈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너머 이해. 이해 너머 믿음. 믿음 너머 신비
신비 너머…, 그 너머, 너머…, 사랑.
그 사랑의 눈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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