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임신인가요?”
“임신이 아니라, 폐경입니다. 요즘은 환경호르몬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조기폐경이 오는 일이 흔합니다. 최근에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셨어요?”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3-짧은 다리의 역습>의 한 장면입니다. ‘크게 스트레스 받은 일’은 바로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의 부도였습니다. 폐차 직전의 차를 몰고 다니며, 빚쟁이에게 쫓겨 다녔으니 오죽했을까요. 의사인 동생집에서 온 가족이 빌붙어 살려니, 마음이나 몸이나 편했을까요.
“갈치 먹고 싶다고 그랬잖아. 왜 안 사왔어!”
오늘 따라 남편의 짜증은 극에 달합니다.
“남편을 우습게 보는 거지? 갈치 사오는 게 뭐 그리 어려워서!”
결국 그녀는 폭발하고야 맙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조기 폐경 왔다고 해서, 까먹었다! 왜! 왜!”
그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자칫 우울증이 올까, 그녀를 졸졸 쫓아다니며 시중을 들고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라, 보듬습니다. 그녀의 청소기가 되어주고, 리모컨이 됩니다.
문제는 그녀가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남편을 배려하느라 입밖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해주겠다 마음먹었던 남편, 옛 부하 직원에게 꾸어 돈을 마련합니다. 
“맛있게 즐기십시오.”
수백 번도 더 들었을, 이곳 종업원의 인사말이 왜 이리 뚜렷하게 들리나요. 언제야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마지막’처럼 들립니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어른어른하고요.
“애들도 데려왔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같이 오지 뭐.”
“그래, 나중에….”
그리고 내레이션이 깔립니다.


그날 저녁 두 부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지막을 모른 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던 아름다운 여행지들.
옛집 대문 앞에서 손 흔들며 나를 배웅해주던 엄마의 미소.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결국 마지막이었던 그 수많은 순간들.
이 호텔에서의 화려한 정찬도 어쩌면 그럴 것이며,
그녀의 마지막 월경도 어느 날 자신도 모른 채 그렇게 지나갔던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는 ‘재림’을 기대하지 않는 슬픈 우리입니다. 매일의 ‘마지막’들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우리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며, 순간순간을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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