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심지어는 근심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운명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언약에 확신을 둔 울부짖음과 애통하는 특권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 애통하며 간구하는 자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말 지혜로운 자는 곤고한 가운데 여호와의 도움을 애통하며 간구하는 자이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와 자기 백성들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과 죽음의 세력에 대해서 분노하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시며, 자기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이 말씀은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뜻은 참새가 건강한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근심하고 있을 때,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비참함과 불행한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악과 죽음과 고통에 대해서 하나님을 비난하고 원망하거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피상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 애통하는 특권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악과 근심과 고통을 선하고 유익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다. 사탄은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탄의 뜻은 선을 악으로 바꾸고 찬양을 애통으로, 웃음을 눈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고백하는 것이다.

진정 지혜로운 순례자는 기뻐하면서도 애통하고 웃으면서도 울 수 있는 사람이다. 애통이 없는 찬양은 피상적인 찬양일 수밖에 없다. 고난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애절한 부르짖음이 없으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과 환희의 찬양을 부를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단지 입술만의 피상적인 찬송을 부르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눈의 초점을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심지어는 근심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운명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언약에 확신을 둔 울부짖음과 애통하는 특권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비극의 원인을 하나님의 뜻으로만 돌리고, 그래서 모든 비난과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자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이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부르짖고 애통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러한 애통과 부르짖음은 소망없는 자들의 절규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고통과 근심 중에서 건지시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는 소망의 절규며 환희의 애통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눈물과 애통이 없는 찬양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찬양이 될 수 없다. 애통하며 찬양하는 역설의 삶을 즐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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