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1.4.7 수 01:45
 
> 뉴스 > 칼럼 > 문지현의 감정이 꽃피는 순간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분노는 나의 힘? 분노만 나의 힘!
[115호] 2011년 09월 25일 (일) 문지현 @

가장 많이 짖어대는 강아지가 가장 겁 많은 강아지라고 한다. 혹시 기훈 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막막한 삶을 바라보면서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분노로 갈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훈 씨는 자기 팔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직도 핏기가 배어 있는 상처는 어제 기훈 씨가 자기 손으로 낸 상처다.

“제 기분요? 모르겠어요. 그냥 멍~할 뿐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 이제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인간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기훈 씨는 우울감과 자살 사고로 병원에 오기 시작했다. 말끔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내면은 고통으로 찌들어 있었다. 무슨 고통?

“그 인간은 제가 기억나는 제일 어린 시절부터 계속 지금 꼴이었어요. 화를 내지 않는 얼굴은 기억조차 안 나는 걸요. 욕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집 문짝은 하도 부서져서 성한 게 없고. 그걸로 성에 안 차면 나와 엄마와 누나를 때리고.”

그가 말하는 ‘그 인간’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기훈 씨의 아버지이다.

이번에는 분노가 넘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분노는 감정이기 때문에 안 느끼는 것도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를 느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이를 파괴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이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터져 나오는 분노는 반드시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화를 내는 사람이 그 값을 지불할 때도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떠맡아야 할 때도 있다. 기훈 씨의 아버지도 분노 때문에 잃는 것이 많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친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거나 자기를 죽이거나 둘 중 하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해하는 아들 뒤에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다
기훈 씨는 자라면서 누렸어야 할 당연한 사랑과 보호의 기억 장소가 텅 빈 채로, 만성적인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난 뒤에는 습관적으로 자해하는데 예전엔 통증을 느끼거나 흐르는 피를 보면 분노가 추슬러졌지만, 이제는 고통을 느껴도 속에서 끓는 불이 가라앉지 않아 스스로도 두렵다.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 오랫동안 주눅이 든 채 지내온 기훈 씨의 어머니는 이미 영혼이 죽은 사람과도 같다. 일찌감치 가정에서 마음이 떠난 기훈 씨의 누나는 원조 교제를 하다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다.

분노만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유일한 통로인 기훈 씨의 아버지는 가정이 다 무너져 내리는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기훈 씨의 아버지는 직장에서도 조금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동료들과 멱살잡이를 하고 다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장으로서의 체면 손실은 그로 하여금 더욱 쉽게 분노에 의지하게 했다. 사회적 위치를 잃고 그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을 잃는 것 역시 기훈 씨 아버지가 자신의 분노 때문에 치러야 한 대가였다.

공격적인 분노는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물건을 파괴하거나, 언어 및 신체적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하는 식으로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상처도 심하지만, 분노의 대상이 된 사람의 마음에 패인 상처가 가장 깊다.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훨씬 더 깊이 새겨지는 마음의 상처는 두고두고 남아서 결국 관계를 파괴하고 만다.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기훈 씨의 아버지는 분노를 특징으로 하는 일종의 성격 장애를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성격 장애의 원인으로 생물학적 요인이나 유전적인 요인들이 다 고려될 수 있겠지만, 기훈 씨 아버지의 마음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좋겠다. 

기훈 씨 아버지는 왜 그렇게까지 분노를 발해야 했을까. 가정도 직장도 엉망이 되어버릴 만큼 화를 내는 동안 그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게 되었으니까. 화를 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불처럼 화를 내는 격노의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훈 씨 자신이 입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아버지의 뒷면을 읽을 겨를조차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것 때문이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훈 씨 아버지에게서는 분노 외에 다른 감정들, 이를테면 슬픔이나 외로움, 무기력감과 두려움 등의 정서가 읽혀지지 않는다. 이걸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면, 이런 감정들을 처리하고 소화해낼 수 없으니까 몽땅 합쳐 한꺼번에 분노로 털어 넣은 결과가 현재의 폐허와도 같은 기훈 씨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으로 분노는 염려이고, 염려는 믿지 못함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동물에 비유해서 좀 안됐지만, 동물 심리를 전공하는 사람들 말에 의하면 가장 많이 짖어대는 강아지가 가장 겁 많은 강아지라고 한다. 혹시 기훈 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막막한 삶을 바라보면서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분노로 갈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라는 가정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만약’을 생각해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훈 씨 아버지가 만취 상태에서라도 자신의 행동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한다면, 그 이야기를 듣는 기훈 씨와 기훈 씨 어머니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 사람이 지금 우리에게 분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 화를 내고 있는 거라면 아버지와 남편을 향한 반응으로서의 분노와 화 대신 연민과 안타까움이 자라게 된다. 비록 아주 약간의 변화라 해도 기훈 씨 아버지가 “더 이상 나를, 자신들의 인생을 망친 짐승 취급을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기훈 씨 아버지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약간의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 후로도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책 같은 얘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최악의 상황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음질치는 사태에 약간의 제동을 걸 수 있는 효과는 있다.

누차 얘기한대로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잘 다스리지 않으면 삶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는 불과 같다. 분노를 잘 다루면 위기 가운데 일어서는 힘이 될 수 있지만, 잘 다루지 못한다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자신과 주변을 그보다 완벽하게 파괴할 수 없다.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표지 보기
“보석 같은 내용이 평정심 찾아줘...
위로를 건넬 작은 근거
시골길의 권서들
“감사나무 한 그루 분양할까요?”
산에서 농사짓던 목사
전지작업
컵라면 용기는 재활용이 안 된다고...
‘사람’이 담긴 놀이터의 사계절 ...
어떤 돈가스 책을 발견했는데 말이...
“하는 것과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