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지킴이② TEEB 한국위원회 김주헌 대표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이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연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그런데 TEEB 보고서를 접하고서는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어요.

“마치 우리가 언제나 호흡하면서도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생태계는 언제나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를 제공해왔음에도 그 가치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많은 의사결정이 내려졌고, 그로 인해 우리 생태계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서상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말이다. 말 못하는 생태계, 우리 주변의 다양한 생물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여기저기 빌딩이 세워지고, 공장이 들어선다. 이에 따른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득을 올릴 수 있다는 지표는 매우 구체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산림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손해액은 추정되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숲은 골프장으로 바뀌고, 생물들은 살 곳을 잃어간다.

이에 전 세계 환경장관들의 결정에 따라 <생태계 및 생물다양성의 경제학> 연구가 시작됐다. 정책담당자, 기업가, 그리고 일반 시민 등의 요구를 다룬 보고서로, 자연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다. 2010년에 출간된 이 보고서가 드디어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세계에서 9번째로 번역?출판되었다.   


*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경제학(TEEB) 연구
유엔환경계획(UNEP)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글로벌 프로젝트이며, 유럽 집행위원회, 독일,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일본의 재정 후원을 받고 있다. 본 보고서의 핵심적 주장은 자연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손실로 인한 비용’이 ‘생태계 및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개발 등으로 얻는 이익’보다 크다.

TEEB 한국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주헌 대표를 만났다.

- 나이가 굉장히 젊어 보입니다.
30대 초반입니다. 함께 출판한 실무자들도 모두 비슷비슷하고요.

- 자원봉사차원에서 출판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 재정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레이프PR&컨설팅’이라는 회사에서 제작비를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매품으로 만들다 보니, 책을 통한 이익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요.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 이익도 없는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서도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위스에서 근무하던 시절 종종 알프스 하이킹을 가곤 했어요.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이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연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그런데 TEEB 보고서를 접하고서는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어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선, 역설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절절히 매겨지지 않은 자연이 함부로 다뤄질 수 있는 현실을 보았거든요.

지난 주말에 올라간 뒷산이 내게 제공한 평안함의 가치는 얼마일까? 태양이 준 따뜻함은? 나무가 제공한 시원한 그늘은? 자연의 가치들이 우리에게 더 명확하게 보인다면,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 자연이 경제적으로 가치평가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소홀히 다뤄져 왔다는 것인가요? 
그런 측면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진 제품에 대해서는 가치 평가를 쉽게 할 수 있잖아요. 가격에 따라 물건을 다루는 마음도 달라지고요. 또 구매 후에는 함부로 다루지 않죠. 사적 소유물이니까요. 그런데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 푸른 하늘, 따뜻한 태양 등 삶의 근간이 되는 자연에 대해서 우리는 그만큼의 관심을 기울인다 말할 수 있을까요?

- 자연의 가치는 시시때때로 바뀔 텐데요.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경제학에서 다뤄지기 위해서는 산출과정에 공신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는 산림, 깨끗한 물, 토양, 산호초의 엄청난 경제적 가치와 이들의 유실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에 대한 평가와 사례가 나오고 있어요. 자연의 가치는 지역별, 생물물리학적, 생태학적 환경과 사회, 경제, 문화적 상황에 따라 변하죠. 그래서 이 보고서가 그 접근방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평가하고, 입증하고, 모색하는 방법을 거치죠.

최근 10년 동안 진행된 관련연구를 모아, 산출된 열대우림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돈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 카메룬 산림의 가치를 측정, 목재가 헥타르당 미화 560달러, 연료목재가 61달러, 그리고 비목재 생산품이 41-70달러로 평가되었다.
> 이 열대우림이 제공하는 홍수 조절 기능은 헥타르당 연간 미화 24달러의 가치를 매겼다. 25,000제곱킬로미터의 이 우림의 면적을 생각했을 때, 물 공급의 가치는 2,420억 달러로 평가된다.
> 4만 헥타르에 이르는 하와이의 어느 집수구역이 제공하는 지하수의 가치는 14억 2천만 달러에서 26억 3천만 달러에 이른다.

- 이런 평가들이 실제로 자연을 보호하는데,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예들 들어, 가격이 매겨지면 이런 산림을 보호하는 이들도 나라로부터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멕시코의 경우 토지 소유자나 공동체가 산림을 보존하고 산림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보상해줍니다.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거지요. 멕시코는 이 계획으로 인해 약 1,800제곱킬로미터 면적의 산림 벌채를 줄이는 효과를 거뒀어요. 물저수량과 다양한 생물 종들이 서식하는 자연을 보호하는데 기여하고, 약 32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죠.

-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지역 사람들은 오히려 자연을 개발했으면 하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빈곤층의 일자리를 위해서도 산업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세부적인 TEEB 보고서가 나와야 알겠지만, 빈곤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자연이 더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자연에 기대고 있는 농업, 임업, 어업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생태계가 훼손되면 이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도 없어지는 것이고요. 산림을 보존하는 게 오히려 빈곤퇴치를 위한 중요한 방법일 수 있어요.

* 생태계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
식량, 원재료, 지하수, 약용 자원, 지역의 기후와 공기 질의 규제, 탄소 격리 및 저장, 극단적 재해의 방지, 폐기물 처리, 부식 방지 및 토양 비옥도의 유지, 수분작용, 생물학적 조절, 종을 위한 서식지, 유전적 다양성의 유지, 레크리에이션과 정신 및 신체 건강, 관광, 미적 감상과 문화, 예술, 디자인에 대한 영감, 영적 경험과 장소의 의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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