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의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

 

올여름엔 다양한 자리에서 노래했습니다.

밀양의 어느 장애우 공동체에 갔을 때는 나보다 밝지 않은 이 하나 없고, 나보다 웃지 않는 이 하나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서의 제 노래는 어설픈 희망과 흐린 평화와 같았습니다. 그 밝음 앞에 그 웃음 앞에, 제 영혼의 어두움을 보고 말았습니다. 밖에선 매미가 간절하게, 그리고 애절하게 울었습니다. 나의 노래보다 더 큰 매미 소리는 나를 더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콘서트를 끝내고, 그곳을 떠나오는데 들꽃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웃는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화장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장애우들의 밝음과 웃음에서, 아름다운 영혼의 화장법을 배운 거지요. 그리고 나 보다 더 큰 매미소리는 제 노래의 깊이를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근래에 다녀온 교도소 사역도 평소와 사뭇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노래를 불러야겠다 싶어 참참이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선곡을 하는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참 없구나’ 싶었습니다. 여태껏 나의 확신에 기대어 불렀던 일방적인 노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노래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아찔함이었습니다. 다시, 마음 깊은 곳에 한편의 노래를 아로새깁니다.

오늘 부르는 노래가 마지막 노래인 것처럼
오늘 만나는 이가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리운 풍경처럼 오늘을.

수도 없이 다짐하며 노래를 해 왔지만, 늘 부르는 노래는 ‘나만의 노래’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텅 빈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듯 노래를 하고 담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교도소 담장 밖에 핀 꽃은 어쩜 그렇게도 예쁜지. 풀들은 어쩜 그렇게도 푸른지. 클로버 꽃은 어쩜 그렇게도 많이 피었는지. 담장 밖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노숙인 공동체를 섬기는 전도사님을 만나 식사를 했습니다. 근래의 사역들을 나누었지요. 장애우 공동체와 교도소 사역까지, 제가 느낀 어려움을 하나하나 풀어놓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신 전도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편지 받았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도소에서 제 노래를 들은 한 형제가 전도사님께 편지했다는 것입니다. 편지는, 형제가 나를 위해 열어준 감동적인 콘서트와 같았습니다. 편지에 제 이야기를 펼쳐 놓았습니다.

그때 ‘내가 모르는 나를 쓰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편지는 저를 위한 하나님의 노래였습니다.

어둠의 이유를 물었습니다.
별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된더위의 이유를 물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이유를 물었었습니다.
인내를 주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가 나타난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랑을 가르치기 위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흰 눈이 오는 이유도 겨울이기에
세상은 이유를 위한 이유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하나님의 사역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렁이는 자기가 땅을 파고 다녀서 땅에 산소가 공급된다는 걸 알까?
다람쥐는 자기가 찾아 먹지 못한 도토리 때문에 산이 푸르다는 걸 알까?
풀벌레들은 자기가 내는 소리가 아름다운 여름밤을 꾸며준다는 걸 알까?
매미들은 자기들의 소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소리꾼이 있다는 걸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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