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떤 열정을 품고 살고 있을까요? 참 사람됨의 열정? 아니면 출세를 향한 열정?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이고,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의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됩니다.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라 부르는 성 베네딕도(St. Benedict, 480-547)는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로마의 행정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교양을 익히기 위해 유모와 함께 로마로 유학을 떠났지만 로마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신앙에 모든 것을 걸기로 작정하고 시골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고독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 마을의 수비아코 계곡에 있는 천연동굴에 들어가서 그는 꼬박 3년을 머물며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수비아코에 성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고, 많은 사람들이 베네딕도를 찾아왔습니다. 인근에 있던 수도자들이 그를 찾아와 원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베네딕도는 그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비코바로(Vicovaro) 수도원은 거룩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규율은 문란했고, 수도자들의 생활도 퇴폐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베네딕도는 아주 엄격한 수도규칙을 만들어 수도자들을 훈련시키려 했습니다. 수도자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어느 날 그를 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마실 포도주에 독약을 탄 겁니다. 베네딕도가 그 포도주를 축성하기 위해 성호를 긋는 순간 그 잔이 깨졌고, 그는 음모를 알아차리고는 수비아코로 돌아갔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을 규율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수도원을 만들었고, 올바른 금욕생활과 기도, 공부, 육체노동, 공동체 생활의 원리를 담은 <베네딕도 규칙>(Regula Benedict)을 반포했습니다. 그것이 다른 모든 수도규칙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베네딕도 규칙이야말로 교회 영성과 서유럽 문화 진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합니다.

수도의 규칙을 반포한 베네딕도

성경에서 베드로는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워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것을 바울의 말로 하자면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 12:15)가 됩니다. ‘자비로우라’는 말은 이웃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쇠붙이가 참 많습니다. 남을 찌르고 그 쇠붙이에 자기도 찔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투성이입니다. 반면 마음 따뜻한 사람, 온유한 사람과 만나면 우리 마음도 부드러워집니다. 그들은 있음 그 자체로 세상을 치유하는 이들입니다.

베드로는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적대자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 메시지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 5:44) 하신 주님의 명령과 일치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만이 폭력의 고리를 끊는 길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모욕하는 사람들,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정신을 갖추어야 합니다. 험한 산을 넘기 전에 마음을 산보다 높게 만들었다는 선다씽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살다보면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사건건 나와 충돌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상대방의 가슴에 깃든 따뜻한 본성을 호출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와 만나면 마치 봄볕에 꽃이 피어나듯 내 속에 있는 선한 기운이 싹트도록 하는 사람 말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괴롭히는 사람과 함께 지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용납하고 사랑으로 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만 그는 자기 속에 있는 선한 본성에 눈을 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가슴에 깃든 본성을 호출하는 사람

신발을 벗어놓은 모습이나 문을 여닫는 모습, 설거지 해놓은 것을 보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합니다. 성도들은 질척질척한 이 땅에 하늘의 빛을 끌어들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희망과 열정이 우리 속에서 꺼지지 않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의 길 위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세상의 아픔에 눈 감고, 오로지 나의 안위와 평안과 기쁨을 구하는 이들은 자기 상실의 길 위에 있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열정을 품고 살고 있을까요? 참 사람됨의 열정? 아니면 출세를 향한 열정?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이고,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의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모신 형제자매의 세상을 꿈꾸셨던 주님은 지금 우리를 통해 그 꿈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베네딕도라는 한 성인이 출현하면서 혼란과 갈등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했던 유럽 사회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되찾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뜻대로 변화되어 생명의 길을 가리켜 보이는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