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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조건이 즐거운 달인을 키운다
일상 한 조각의 잠언 ▶ "재주는 달인이 넘고 이익은 회사가 챙기고"
[113호] 2011년 08월 07일 (일) 배지영 @


만일 그들이 2년 뒤엔 잘릴 거라는 불안한 상태였다면, 쓰다 버리고 마는 일회용품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스스로가 느낀다면, 과연 그들은 이렇듯 ‘행복한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과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생활의 달인’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수십 년 간 한 분야에 종사하면서 부단한 노력으로 이른바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이 출연한다.

기억에 남는 달인들이 많았는데 그들 가운데 12년 넘게 마트에 근무하던 이가 있었다. 그는 쇼핑 카트를 정리하고 운전하는 달인이었다. 70, 80개 연결된 카트들을 자유재재로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치 잘 조련된 커다란 뱀을 움직이는 조련사라도 된 듯 했다. 장애물 피하기는 물론이요, 좌회전, 우회전 능수능란했다. 그와 비슷한 기간 동안 근무한 다른 이들은 그를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현재 일하는 마트에서 계속 일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가꿔가는 것이었다.

실내 스키장의 달인도 있었다. 10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다는 삼십대 사내는 큼직한 보드화들을 두 팔 가득 안고 이동시킨다. 총 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는다고 하는데 여간 가뿐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여러 켤레의 보드화들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 했고 어찌 보면 참 쉬워 보였다. 물론 그를 따라 할 수 있는 직원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단련된 솜씨가 아니었다. 퇴근 후에 홀로 남아, 여러 개의 공으로 무게 중심 잡는 법을 연구하면서 성공시킨 거라 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일이 매우 즐겁다고 말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삐딱한 시선으로도 볼 수 있다. 저렇게 달인을 양성(?)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똑같은 월급에 몇 배의 일을 하는 직원이 곁에 있다면 동료들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혹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건 아닐까. 그들로 인해 실상 이익을 얻는 건 어쩌면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나 일터의 사장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고쳐먹게 한 건 달인들의 행복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즐겼다. 남들보다 서너 배의 일을 한다고 해서 월급을 그렇게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퇴근을 빨리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고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일하는 내내 행복해 보였다. 앞으로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미래에 대한 나름의 꿈도 있었다.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다. 만일 그들이 2년 뒤엔 잘릴 거라는 불안한 상태였다면, 쓰다 버리고 마는 일회용품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스스로가 느낀다면, 과연 그들은 이렇듯 ‘행복한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과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부당한 야근에 치인다면 퇴근 후에 홀로 남아 혹은 집에 가서도 일을 연구할 수 있었을까.
또한 나름의 경지로 달인이 됐음에도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다면, 그들이 꿈꾸던 미래, 자부심, 앞으로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싶다던 소박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직장마다 일터마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자부심을 갖도록 인간적인 처우를 해주면 된다. 미래를 향한 소박한 꿈을 꿀 수 있는 정규직을 늘리면 된다.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조차 그 프로그램이 장수했기에 지금의 달인- 최근엔 피겨스케이팅에까지 도전한 달인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행복한 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빨리 더 많이 일하는 달인 뿐 아니라 즐겁게 일하는 달인, 동료들에게 웃음을 주며 일하는 달인, 조금 서툴더라도 노력하나 만큼은 알아주는 달인들 말이다. 그래서 달인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뭐야, 저렇게 일하면 돈 버는 건 회사잖아. 재주는 달인이 넘고 이익은 회사가 챙기는군” 이런 빈정거림도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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