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식물 같아서 뿌리 내리고 사는 땅에 의지하나 봅니다. 그가 시인이거나 화가라면 그의 시와 그림에는 그가 살고 있는 땅의 그림자가 엿보입니다. 땅은 그렇게 사람을 품어주고 사람은 그 땅의 기운을 품어 커 갑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어느새 사람은 땅의 한 부분이 되고 땅도 사람의 한 부분이 되어버립니다.

안도현 시인은 오래 전 전북 장수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할 때 아이들과 학교 뒤뜰에 호박을 심고 거둬서 전을 부쳐 먹으며 지냈습니다. 철따라 여기저기 피는 꽃들을 보면서 그의 생각은 어느새 자연과 일상 속으로 들어옵니다. 동화의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유명해진 <연어>는 바로 그때 쓴 작품입니다. 그는 요즘 전주에 사는데 “전주는 나직해서 좋다. 높은 건물이 없고 한옥마을을 비롯해 대부분 집들이 낮아서 눈과 마음도 편안하다. 또 전주는 여전히 맑고 싱싱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발 딛고 사는 땅처럼 그도 맑고 싱싱한 삶을 살아가고 싶겠지요. 또 그런 시를 길어 올리고 싶겠지요.

가난한 시인 함민복에게는 강화도가 그런 곳입니다. 그에게 강화도는 바다이고 삶이고 역사입니다. 강화도의 모든 것이 그를 자극하여 마음을 흔들고 시인의 시심을 이끌어내는 셈입니다. 이제 그는 이런 고백까지 합니다. “나 죽으면 망둥어 밥 되게 갯벌에 뿌려 달라”고.

사석원이라는 화가에게는 광장시장이 그런 곳입니다. 양장점을 하신 어머니는 옷감 뜨러 광장시장을 드나들었고, 사석원은 어머니를 따라 옷감 냄새를 맡으며 광장시장의 향기를 몸에 담았습니다. 먹자골목에서 순대와 떡볶이 머릿고기를 사먹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옷본을 그렸고, 사석원은 그 어머니 곁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달력그림을 베껴 그리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흐의 풍경화였습니다. 지금도 광장시장에서 친구를 만나는 그는 음식의 맛과 주인의 마음씨, 손님의 입담까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질 때 그 자리에서 글을 씁니다. 정말 놓칠 수 없는 풍경을 잡았을 때 그 자리에서 스케치를 합니다. 광장시장은 그에게 영감을 일으키는 호수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내 인생의 ‘그곳’은 어디일까? 사람이 제 안의 영감을 꽃피우고 행복한 삶을 살아 내려면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터전과 한 데 섞어야 하나 봅니다. 그곳의 사람들, 그곳의 풍경들, 그곳의 향기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또 자신을 그곳에 내어주었을 때 비로소 식물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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