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카바나’를 꿈꾸는 <코파카바나>의 주인공 바부에게

바부, 당신에게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과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동의어이듯, 에스메랄다에게는 ‘정상적인’ 삶이 코파카바나 해변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 딸의 갑작스런 결혼 선언은 바로 당신과 다른 정상적 삶, 유목이 아닌 정주의 삶을 살겠다는 단호한 독립선언인 셈이겠지요.


<코파카바나>(Copacabana), 이자벨 위페르(바부), 롤리타 샴마(에스메랄다) 주연 / 마르크 피투시 감독, 2010년작.
“엄마가 결혼식 안 왔으면 좋겠어.”
“왜?”
“엄마한테 돈 때문에 부담주기 싫고….”
“그게 다야?”
“…창피해서 싫어.”
“내가 가난해서 창피하니?”
“그게 아니라…, 가끔 정신 나간 사람 같잖아.”

당신 오랜만에 정성 들여 준비한 저녁식탁에서 딸은 갑작스런 결혼 선언을 합니다. 일언반구 결혼 얘기를 꺼낸 적 없었기에, 당신이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결혼 허락은 고사하고 결혼식 날짜와 장소까지 일절 묻지도, 의논하지도 않은 딸에게 당신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었지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당신은 그마저도 쿨하게 받아 넘길 수도 있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딸은 멀쩡히 프랑스에 살고 있는 엄마를 지구 반대편 브라질로 보내버렸지요.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갔기 때문에 전화 통화도 쉽지 않고, 결혼식 참석도 어려울 거라고 시부모 될 분들에게 이미 말해 놓았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결혼식엔 안 와도 되고, 또 올 생각조차 말라는 거였지요. 이유를 묻자 ‘엄마가 창피해서’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바부, 그때 당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당신 마음 같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이 영화에서 짧지만 가장 많은 눈물을 보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특히 브라질 음악을) 좋아하고 얽매이는 것과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당신은 브라질을, 리우 데 자네이루의 해변을 동경합니다. 여태껏도 당신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여러 곳을 떠돌며 자유분방하게 살아왔습니다. 그게 당신이 인생을 사는 방식이자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세상에 구속되지 않는 노마드[遊牧]의 삶 말이지요.

스물두 살인 대학생 딸 에스메랄다는 그런 당신의 세계관과 생활방식을 견딜 수 없어합니다. 자유분방한 엄마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딸은 엄마와는 정반대되는 삶, 세상 속에 정착하는 안정된 정주(定住)의 삶을 꿈꾸게 된 겁니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느라 학교도 진득하게 한 군데를 다니지 못했어. 이젠 그렇게 안 살아. 나도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

바부, 당신에게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과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동의어이듯, 에스메랄다에게는 ‘정상적인’ 삶이 코파카바나 해변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 딸의 갑작스런 결혼 선언은 바로 당신과 다른 정상적 삶, 유목이 아닌 정주의 삶을 살겠다는 단호한 독립선언인 셈이겠지요.

그 일 이후, 당신은 딸에게 정상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노라는 결심을 하고는 드디어 벨기에 해안 도시의 콘도 회사에 영업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도시에서 사귄 친구의 도움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내리는 훼리선 부두에서 회원 모집 홍보를 하여 실적을 올립니다. 단연 뛰어난 성과를 낸 당신은 인정을 받고 상담 안내직(내근직)으로 승진을 하지만, 길거리의 젊은 부랑자 커플을 먹여 주고 심지어 콘도의 빈 방에 몰래 재워주다가 발각돼 결국 해고당하고야 맙니다. 당신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에는 동료들의 질시와 뒷말, 게다가 냉정한 팀장의 원칙주의는 너무 높은 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고하면서 받은 급여를 당신은 카지노에서 베팅을 하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게 상당히 많은 돈을 따냅니다.

드디어 에스메랄다의 결혼식 날, 피로연이 시작되자 갑자기 흥겨운 브라질 음악이 흘러나오고 모두들 의아해합니다. 어느덧 피로연 장소는 브라질 무용단의 축하 무대로 바뀌고 피로연 분위기는 음악과 춤사위에 한껏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무용단 사이로 나타난 당신이 딸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딸과 함께 춤을 춥니다. 당신이 ‘브라질에서 딸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사절단을 이끌고 온’ 멋진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바부’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무용단과 함께 떠나기 전, 처음으로 당신과 에스메랄다는 서로 따뜻이 껴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따뜻이 껴안아 주듯이 말이지요. 뒤이어 에스메랄다가 건넨 인사는 ‘안녕’이 아니라 “재밌게 지내!”였습니다. 정말 바부의 딸다운 인사였지요. 버스 안에서 당신은 시린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손을 흔듭니다. 먼지 일으키는 버스와 함께 당신은 떠나고 에스메랄다는 남습니다.

딸의 인사처럼 당신은 다시금 스스로도, 어느 누구도 얽매지 않고 즐거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고, 에스메랄다는 자기만의 안정된 삶을 꾸리며 살아가겠지요. 저마다 자신의 ‘코파카바나’를 동경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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