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한 조각의 잠언 ▶ “해로운 관계는 끊어라”


맘에 안 들 수도 있다. 끝까지 그 성격 안 고쳐지니 짜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대로 맞춰가며 어울려 지내야 하는 게 실상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내용처럼 해로운 관계를 끊어버리기 보다는 포용하고 살아가는 게 더 현실적인 것 아닌가 싶다.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기(氣)라도 빨린 듯 지치고 우울해진다. 그땐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면 울컥하기도 한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다. 가끔 만나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매일 만나야 한다면 심각해진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혹은 자주 봐야 하는 학교 선후배, 친구라면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울화가 사무쳐 건강까지 해치는 것 같다.

한 책에선 이 같은 관계를 ‘해로운 관계’라 정의하며 이를 감별하는 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 친구가 당신을 지원하고 걱정하는 척하면서, 당신이 흥미로워하는 모든 새로운 생각에 대해 반박하지 않는가?
- 물이 반쯤 담겨있는 유리잔을 보고 유리잔이 절반이나 비었네, 라는 식으로 이 세상을 보는 친구가 있지는 않은가?
- 어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특히 과식을 하게 되거나 과소비를 하게 되지 않는가?
- 친구가 자신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당신의 이야기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지 않은가?
- 식당에 가면 언제나 음식이나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고 늘 맛도 없는 음식에 바가지만 썼다고 불평하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처음 읽었을 땐 ‘누군가’가 떠올랐는데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니 그 ‘누군가’가 내 모습이기도 했다. (‘언제나’는 아니겠지만) 세상에 대해 이른바 ‘좋게’ 말하는 친구에게 난 ‘삐딱하게’ 말했으며 (‘언제나’는 아니라 믿는다) 친구가 야심차게 데려간 식당에서 음식이나 서비스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다. 나의 ‘문제’에 몰두할 땐 누군가 용기 내어 말하는 그의 ‘문제’가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책에선 이같이 ‘해로운 관계’는 과감히 ‘끊으라!’고 충고한다.
문득 이런 해로운 짓을 했음에도 친구와 지인들이 내 곁에 머물러 준 것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요즘 대세가 된 애니메이션 <뽀로로>를 보면 그들 관계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운 관계’는 아닌 듯싶다. 

공룡 ‘크롱’은 그야말로 민폐 캐릭터다. 뽀로로 집에 얹혀(?) 살면서 뽀로로가 잡아온 물고기를 먹어치운다. 뽀로로도 치사하기 마찬가지다. 크롱이 자기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하게 심술부리기도 한다. 여우 ‘에디’는 어떤가. 낚시가 안 된다고 자기 썰매엔 아무도 태워주지 않는 건 물론이요, 보물지도를 보고 혼자 보물을 찾으러 가기도 한다. 철저한 이기주의자다. 

하지만 결말은 대개 ‘포용’이다. 잘못한 친구가 뉘우치고 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저 그 성격 그대로 인정하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뽀로로와 친구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맘에 안 들 수도 있다. 끝까지 그 성격 안 고쳐지니 짜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대로 맞춰가며 어울려 지내야 하는 게 실상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내용처럼 해로운 관계를 끊어버리기 보다는 포용하고 살아가는 게 더 현실적인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래. 이런 친구도 있고 저런 친구도 있지’ 하며 품어주는 ‘뽀로로와 친구들’ 같은 맘 넓은 이들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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