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월호 씨 이야기

 

나는 이 휴가시즌에 환갑이 다 된 아줌마의 아등바등 살아온 이야기를 읽으며 또 마약 같은 열정을 수혈 받는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했던가. 비단 휴가뿐일까. 인생 여정 마치는 날에도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날 짐이 얼마나 가벼울까.


그녀는 콧구멍 빼고는 안 아픈 데가 없는 아이였다. 폐결핵과 결핵성 늑막염, 게다가 혈액까지 RH-B형이었다. 병원에서도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고, 결혼을 앞둔 첫사랑도 떠나보내야 했다. 슬픈 그녀는 미국에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두 번씩이나 이혼한, 열일곱 살 위의 군인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났고, 13년을 살다가 다시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21년이 다시 흘렀고 ‘홀로서기’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회갑의 세월을 산 조월호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여정이다. 몇 줄 안 되는 그녀의 짧은 이력서에는 소설이 몇 권이 나올 이야기들이 켜켜이 스며 있다.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라는 책의 제목부터 어느 이방인 여인의 수고와 눈물과 의지와 용기와 성취가 감지되었다.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뜨겁게 살았는지, 이야기 몇 꼭지만으로도 충분하게 와 닿는다.

나는 날마다 새벽 네 시에 집을 나선다. 내 출근시간은 새벽 네 시다. 그렇게 별처럼 바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정말로 오랜 세월 동안 새벽 세 시 기상을 해왔다. 그리고 네 시 출근 시간을 고수해 왔다. … 그래서 매일 처리해야 할 바느질은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아홉 시 전에 끝내야 한다. 새벽 네 시부터 아홉 시까지 기를 쓰고 일한다. 이제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몸에 완전히 배어 있다. 아침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열심히 일한다. 그 다섯 시간이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린다.

이혼하면서 모든 재산을 남겨두고 10대의 딸만 데리고 나와 그야말로 출발점에서 다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온 데는 그녀의 이런 부지런한 삶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부지런한 사람이 꾸지 않는 건 만고불변이다.
이혼하기 전에도 그녀는 부지런했다. 그 부지런함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알칸소 주지사로 있던 1985년에 클린턴 주지사로부터 ‘올해의 여성상’을 받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때 그녀는 남편의 고향 시골마을에서 은행원으로 일하였다.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므로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기저기 초대 받아서 한국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복을 입었고, 한국관광공사에 연락하여 홍보물을 받았다. 언론에도 알려져 한복을 철따라 협찬해주기도 했다. 주말이면 마을 양로원에 가서 한 방에 둘러앉은 노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국 찬송을 불러주면 다들 좋아하였다. 게다가 야간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도 했다. 그렇게 벌처럼 움직이고 봉사활동을 하며 학교까지 다니는 아줌마에게 주 정부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이혼한 뒤 방 한 간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딸과 힘들게 살다가 동생과 부모님이 동거하면서 방 세 간짜리 아파트로 옮겼는데 딸, 동생, 부모님께 방을 한 간씩 주고 그녀는 응접실 바닥에서 지냈다. 무려 10년 간 그리 지내면서 ‘내 방’을 꿈꾸었고, 결국 방 네 간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옷 수선을 해서 번 돈으로 그렇게 딸의 학비를 대고, 집을 넓혀갔다. 세탁소 열 군데와 거래를 터야만 겨우 밥벌이가 되는 옷 수선가게가 나중에는 백화점과 거래를 트게 되고 매장 전체 수선 옷감을 받아내는 데까지 뻗어나갔다. 낯선 땅에서 홀로 서고자 한 아줌마의 억척스런 삶이 그렇게도 다부졌다.

미국에서 살려면 실력을 키우자, 그렇게 처음 미국 왔을 때 마음을 먹고 영어를 배웠는데, 뉴스방송을 따라하고 TV에서 나오는 말도 무조건 따라하며 한 단어, 두 단어, 세 단어로 넓혔다. 은행에서 일할 때는 수표에 멋진 글씨체가 나오면 복사해서 쓰기 연습을 했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냅킨 위에 글씨 쓰기 연습을 했다.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필체까지 가졌다. 그러면서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났고, 무료 통역에다 무료 법무까지 해줄 만큼 실력을 쌓았다. 

이제는 이민 와서 겪는 어려운 일들, 교통사고나 세금문제, 장례, 결혼, 보험 처리까지 ‘시스터 조’라는 애칭까지 들어가면서 자기 일처럼 돕는다. 게다가 글까지 썼고, 수기 공모에 당선도 되었다. 그렇게 발 크고 오지랖 넓은 아줌마, 그가 조월호 씨다.

사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군가의 자수성가 형 책들이 그리 와 닿지가 않아졌다. 사람마다 제각기 의지력의 크기도 다르고, 지혜의 깊이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그런 이야기들이 결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누군가의 열정적인 삶을 읽고 나면 어느새 내 안에서도 열정이 솟구쳤지만 그렇게 생겨난 열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 휴가시즌에 환갑이 다 된 아줌마의 아등바등 살아온 이야기를 읽으며 또 마약 같은 열정을 수혈 받는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했던가. 비단 휴가뿐일까. 인생 여정 마치는 날에도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날 짐이 얼마나 가벼울까. 그러고 보면 부지런히 일한다는 건 내게 쌓인 무거운 짐들을 풀어놓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날아가듯이 제대로 떠나기 위하여 부지런히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쉼의 계절을 위해서도 나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조월호 씨의 에세이집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매직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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