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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출구를 봉쇄하라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걸 일종의 위협으로 인식하면 화가 난다
[111호] 2011년 07월 10일 (일) 문지현 @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걸 일종의 위협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화가 났다. 늦으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그건 아니다. 자기의 생각에 지켜야 하는 원칙(이를 당위라고 한다)이 있는데 그게 깨어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남자 친구는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간을 잘 지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는 슬슬 짜증과 뒤섞인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너무 보채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는 전화를 하지 않고 기다린다. 영화가 시작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고 영화관에 들어가야 두 시간 반짜리 긴 영화를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볼 일이 없을 텐데. 약속 시간에서 10분이 넘은 뒤에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다 와 가?” 여자가 다짜고짜 묻는다. 남자친구는 “어…거의 다 왔어. 쫌만 기다려.” 소리를 듣자 하니 아직도 전철 안에 있는 게 뻔했다. 이렇게 늦을 줄 알았더라면 괜히 회사에서 눈치 봐가면서 일찍 빠져나왔잖아. 제 시간에 끝내고 나와도 됐을 텐데. 부글거리는 화가 점점 끓어오르면서, 여자는 남자 친구에게 뭐라고 한바탕 해줘야 속이 후련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남자 친구는 약속에 처음 늦은 게 아니므로 더욱 화가 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남자, 인간이 한참 덜 됐다는 인격 모독적인 생각까지 불사한다.

드디어 지하철 계단에서 남자 친구 모습이 보인다! “미안~ 나 늦어서 화났어?” 여자의 대답은, 뻔하다. “아니야.” 하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하며, 부루퉁 내민 입술에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극장을 향해 쌩하니 걸어가는 뒷모습은 분노의 화신 그 자체다. “어, 어디 가?” “몰라, 빨리 표부터 찾아야지.” 화는 잔뜩 났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자주 경험하는 감정 열 가지를 꼽으면 부정적인 감정 가운데 선두 주자로 꼽히는 게 분노라고 한다. 그만큼 분노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렇지만 죄책감만큼이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감정이기도 하다. 분노는 외부의 위협을 인식했을 때 즉각 이를 멈추거나 없애려는 행동을 취하(기로 결심하)면서 경험하는 느낌이다.

앞의 여자는 지각하는 남자 친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약속 시간에 늦어서는 안 된다)에서 벗어나는 걸 일종의 위협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화가 났다. 늦으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그건 아니다. 자기의 생각에 지켜야 하는 원칙(이를 당위라고 한다)이 있는데 그게 깨어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어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을 느끼겠지. 네 시가 되면 안절부절 못하고 걱정이 되고 그럴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될 거란 말이야.” 여우는 왕자를 기다리면서 화가 나지 않고, 도리어 기다리는 행복으로 가득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늦어지는 남자 친구를 위협으로 생각하는 게 다소 뜬금없이 느껴진다면, 제일 최근에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를 떠올려 봐도 좋다.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그때만큼은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감출 필요도 없기 때문인지 평상시에는 점잖은 사람들이 혼자 운전하고 있을 때에는 격하게 화를 내기 쉬워진다.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의 행렬 뒤에 한참 서서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별로 급할 것도 없어 보이는’ 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면서 내 차 앞으로 끼어들려고 한다. “누구는 바보라서 여기서 이렇게 한참 기다린 줄 알아?”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위협감은 곧바로 분노로 연결되어 끓어오른다. 끼워주지 않으려고 앞 차와의 간격을 바작바작 좁히는데, 아차차. 서로 양보하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던 차들이 마침내 서로 부딪히고 만다. 그 순간 뻥 터지는 분노. 신경질적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고 차 창문을 연다. 만일 서로 적절해 보이는 상대라면 고성이 오가기 시작한다. 만일 실수로 화를 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무서운 인상의 사람이라면 그냥 조용히 보험회사에 연락하거나 경찰에 전화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을 분노가, 만만해 보이는 상대에게는 더 쉽게 터져나간다. 운전을 잘 못하는 여성 운전자에게 쌍시옷과 함께 ‘기선 제압’을 시도하는 남성 운전자들이 그런 식이다.

분노는 생리적인 현상과 동반해서 나타나는 감정이기도 하다. 분노와 연관성이 있는 걸로 자주 거론되는 호르몬은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이 있다. 둘 다 교감 신경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분노하면 앞의 이야기에서 남자 친구를 기다리던 여자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혈압이 오르면서 얼굴이 벌겋게 된다. 눈썹 근육은 가운데로 몰리면서 아래로 처지고 상대를 뚫어지게 쏘아보게 된다. 이 모습은 유아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빠르면 생후 2개월 정도의 아기들은 사지를 뻗대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하니까. 맥박 수가 증가하는 것은 빠른 움직임을 위해 필요하다. 분비된 호르몬들은 이후에 닥칠 상황, 즉 주먹을 휘두르거나 최소한 목청껏 고함을 쳐서 분노했다는 사실을 만방에 떨쳐 보일 준비를 하는데 제 역할을 다 하게 된다.

이런 호르몬들이 자율 신경계(교감 신경계는 자율 신경계에 속한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율 신경계는 말 그대로 ‘자기 스스로 조절하면서’ 움직이는 신경이다. 분노라는 감정은 이 자율 신경계를 건드리기 때문에, 일단 화가 난 다음에는 신체 반응을 조절하려는 시도가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려는 시도만큼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아무리 손부채질을 열심히 해도 다시 뽀얗게 되지 않는다. 차라리 처음에 분노가 시작되는 과정을 조절하면 조절했지, 일단 분노 표출로 넘어간 뒤에는 무너지기 시작한 도미노를 붙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화가 솟구친 다음에 이를 조절하려는 시도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분노에서는 시작을 잘 잡는 게 무척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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