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예수' 서서평 선교사 77주기 추모예배


태풍 ‘메아리’가 한반도를 삼킨 날이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거셌다. 광주 호남신대에 있는 선교사 동산은 밤새 내린 비로 오르는 길이 질퍽거렸음에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나환자의 어머니’ ‘작은 예수’ ‘한국여성사회의 개척자’ ‘독립운동가’ 등으로 불리던 서서평(Elisabeth J. Shepping)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32살의 나이로 조선을 찾은 것이 99년 전이다. 나라 잃은 슬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그 시기, 서서평은 아무도 돌보지 않던 문둥병 환자를 품으며,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지냈다. 천국에 가기까지 22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굶주린 이들과 아낌없이 나누었다.


된장국을 좋아한 서서평, 徐..徐..平..

서서평이라는 이름은 쉐핑의 발음을 살린 그녀의 한국 이름이다. 자신의 조급한 성격을 고쳐 볼까 하는 뜻으로 ‘서서(徐徐)히’의 ‘서’(徐)를 성으로 가져왔다. 하나만으로는 그 서두르는 성미를 누를 수 없어, ‘서’(徐)자 하나를 더 덧붙였다. 여기에 들쭉날쭉 모난 성격을 평평하게 하고자 ‘평’(平)을 붙여, 이름이 서서평(徐徐平)이 됐다.

처음 그녀는 광주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다. 환자를 돌보면서, 한국어와 한국 풍습을 익혔다.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도 이 시기이다. 고무신에 한복을 자주 입고, 된장국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된장국이 무엇인가? 유명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부인들도 혐오한 음식이 된장이었다. 그렇게 서서평 선교사는 서서히, 허울 없이, 조선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다가왔다.

고국 미국에서 보내오는 생활비는 철저히 한국의 고아들과 가난한 여성들, 그리고 환자들을 위해서 사용했다. 불우한 이들을 찾아가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추운 겨울이면, 밤사이 다리 밑이나 거리에서 잠을 자는 이들을 돌아보며, 담요를 덮어주고 다녔다. 특히 고아들은 친자식처럼 아껴 주었다. 그녀의 양자로 삼은 이들이 열 명이 넘는다.

윤락여성 선도 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만주로 팔려가는 19세 소녀를, 돈을 주고 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윤락여성들이 새 삶을 살기 원하면 빚을 대신 갚아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영향을 끼쳤다. 거리에서 여자 나병환자나 거지들을 발견하면, 집에 데려와 목욕을 시켰다. 한국 사람도 ‘재수없다’ ‘무섭다’며 피해 다닌 문둥병자를 집으로 들여, 밥을 먹이고 새 옷을 입혀주었다.

‘서서평’이라는 이름이 광주지역을 넘어 서울, 부산, 평양에까지 널리 퍼졌다.

 


밀가루 두 홉 남기고….

서서평이 눈을 감았을 때, 동아일보(1934년 6월 28일자)는 그녀의 삶을 이렇게 기록했다.

자선, 교육사업에 일생 받힌 빈민의 자모 서서평양 장서
생전에는 ‘재생한 예수’의 칭호, 모범 할 근면력행의 일생

이 학교는 이혼당한 여자, 남편이 죽고 없는 여자, 학령이 초과한 여자 등을 교양하여 왔었는데 동 서서평양은 학교 창설이래 자기의 생활비 일체까지 학교유지비에 받히었으므로 사생활은 극도로 곤란하였다 하여 무너진 주택을 수선할 여유조차 없었다 한다. 그러던 중 지난 26일 오전 4시에 드디어 이 세상을 떠났다는 바 그 장의는 전광주기독교단체 연합장으로 성대히 거행하리라고 한다.

교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그의 장례는 비기독교인들의 요청으로 광주 최초의 사회장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전남지사 야지마, 경찰부장 사또 등 일본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서서평의 장례에 그들이 참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삶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수백 명의 걸인, 나환자들이 ‘어머니, 어머니이!’하고 뒤를 따랐다. 그 소리가 마치 비행기 소리와 같았다 한다.

그녀가 남긴 거라곤 금전 7전과 밀가루 2홉이 전부였다. 병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서서평은 자신의 시신을 해부해서 병명을 밝혀, 다시는 자신과 같은 병으로 죽는 이가 없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해부 결과 그녀는 영양실조였다. 골다공증으로 뼛속 깊은 곳까지 아픔이 파고들었지만, 결코 자신의 배를 채우지 않았던 것이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소리…,
그녀도 들었을 이 소리들 여전하듯,
우리의 삶도 그녀와 여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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