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작전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조상님께서 슬퍼하고 계십니다” “얼굴에 덕이 많으세요” 등으로 접근하더니, 요즘엔 길을 묻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습니다.

지하철역이 어디에 있는지 힘들여 한참을 설명했는데, 알고 보니 ‘도인’이셨습니다. 허탈감, 분노, 짜증의 감정이 욕으로 솟구쳐 오르는 걸 애써 억누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분노도, 짜증도 낼 수 없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을 거는 그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초라했거든요. 한 달 정도는 빨지 않은 것 같은 옷을 입고, 슬리퍼 사이로 나온 맨발이 유독 눈에 거슬렸습니다. 하는 말도 어눌하고 자신감도 없어 보입니다.

그때 옆에서 그를 뚫어지게 지켜보는 한 남자가 제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사람들, 항상 둘씩 다니는 거 아시죠? 시키는 대로 잘하는지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긴장한 이 아저씨를 빨리 구해줘야 할 텐데…. 아저씨의 말을 끊고, 돌려보냅니다.

그때부터 ‘도인’들의 외모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같이 초라하고 남루한 옷차림입니다. 교회에서는 흔히 발견되지 않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품지 못했기에, 어쩌면 쫓아냈기에, 먼저 다가오는 ‘도’를 쫓아간 것일까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단계’에 빠지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내 자식들도 우리를 이렇게 재밌게 해주지 못하는데, 여기에 오면 참 즐거워.” 외로움 타는 어르신들의 공허함을 파고든 것이죠. 이래저래 교회가 채워주어야 할 공백을, 도인과 다단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동행>이 담아내는 이야기가 잃어버린 우리의 역할을 되찾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하진 않지만, 삶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아름다운 이들의 이야기를 펼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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