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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그냥 있어주는 낙엽처럼
일상 한 조각의 잠언 "내가 해봐서 아는데…"
[110호] 2011년 06월 26일 (일) 배지영 @


그러고 보면 참된 위로란 실은 참 ‘조용한 일’인 듯하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떠들썩한 말잔치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너의 아픔은?’이란 물음표에 기대어 그냥 들어주는 것, 슬며시 곁에 있어주는 조용한 일이 위로의 시작 아닌가 싶다. 

요즘 친구는 무척 힘들다. 건강도 좋지 못해 병원에 다녀야 했고 상황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듯 했다.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사람도 다 잘 해나가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겠지.”

친구는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해치우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책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생각이 그녀를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비교하는 대상은 그녀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사람일 수 있었다.
한 때 난 스스로가 너무 의지력이 약하다며 자책했었다. 그러다 문득 체력이 남들보다 강하지 못한 것과 의지가 약한 건 엄연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그건 내게 아주 큰 깨달음이었다) 그러니까 몸이 약해서 밤을 샐 수 없는 사람이 하루에 두세 시간 자면서 일을 척척 해치우는 사람에 비해 의지력이 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말이다.

난 그걸 얘기해주고 싶었다.

자신의 체력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타인이 한 일의 분량과 비교하며 우울해할 필요 없다고(왜냐면 내가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난 그녀에게 남들처럼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 무거울 것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내 말이 친구에겐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충고’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다른 모든 말들 -그러니까 난 위로라고 생각했던 말-에 대해 진심으로 서운해 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 역시 친구에게 서운했다. 씁쓸했다. 아, 이렇게 진심을 왜곡해서 이해할 수 있다니. ‘쑥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듣던’ 친군데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이란 제목의 시 한 편을 읽게 됐다.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는 없는 내 곁에서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그랬다. 친구에게 필요했던 건 어떤 달콤한 위로나 충고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겪고 있는 어려움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듣는 것, 말없이 그냥 있어 주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그녀가 토로한 고통은, 내가 겪었고 알았던 아픔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것이다. 단지 체력이 약해서 뿐 아니라 (내가 모르는) 많은 문제가 얽혀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전하는 (내가 아는) 알토란같은 정보, 혹은 보석 같은 경험담이 무슨 소용 있을까. 답답하고 갑갑스런 ‘딴소리’에 불과한 것이었을 테다.
그러고 보면 참된 위로란 실은 참 ‘조용한 일’인 듯하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떠들썩한 말잔치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너의 아픔은?’이란 물음표에 기대어 그냥 들어주는 것, 슬며시 곁에 있어주는 조용한 일이 위로의 시작 아닌가 싶다. 

배지영
배지영 님은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오란씨>(민음사)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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