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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준비한 컴퓨터를 은하에게 전해주자 눈이 왕방울 만해졌습니다. 컴퓨터를 받아들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은하에게 “이것은 ‘아빠’의 선물이야”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없는 사람은 아빠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빠가 있는 사람은 아빠가 한 사람이지만 아빠가 없는 사람은 아빠들이 있습니다.

의정부에 있는 ‘사랑의집’ 42호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마련하신 사랑의집 42호는 교회가 2200만 원을 주고 전세로 얻은 집입니다. 이 집에는 고등학교 1학년인 은하(가명)와 고3인 오빠 그리고 65세인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이사했는데, 가서 보니 아담한 단독주택 1층에 있는 방 두개짜리 집이었습니다. 남성도회 회원들이 내부 수리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회원들 중에는 이렇게 봉사하려고 일부러 도배를 배워 자격증까지 딴 분들도 계십니다. ‘은하 아빠들’의 사랑의 수고와 섬김이 배어 있는 집입니다. 이 집을 계약할 때부터 아빠들은 움직였습니다. 집 안 곳곳에 남성도회 아빠들의 손길이 여기 저기 닿아 있었습니다. 장농과 세탁기를 교회 창고에 가서 실어온 총각 아빠들의 사랑도 더해졌습니다. 아빠들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아빠들이 마련해준 ‘사랑의집’

은하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은하 할머니가 조카에게 이사를 하게 된 이야기를 했더니 조카가 믿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서 더 이상 말을 못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교회에서 집을 얻어 주느냐고 했답니다. 듣는 사람들이 듣고도 믿지 못하는 일, 이것이 기적입니다.

은하 할머니는 이전에 살던 집을 떠올리면서 “거긴 쥐들의 아지트였어요” 했습니다. 은하는 할머니와 그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벽에 붙어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방 가운데서 할머니와 자는 것이 어색해 몸이 벽에 닿아야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갑갑해서 잠을 못잘 텐데, 은하는 그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은하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순하게 생긴 고등학생이 들어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은하는 요즘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자기 책상이 생긴 것도 처음 있는 일이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처음입니다.

은하는 참 착합니다. 할머니 건강을 얼마나 챙기는지, 은하가 오면 할머니는 아픈 내색을 하지 못합니다. 애가 너무 마음 아파해서 그렇습니다. 할머니의 기쁨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힘입니다. 은하네 가족을 수년간 돌보고 있는 전도사님도 함께 동석하여 은하네 가족들과 감사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은하는 고3인 오빠를 위해서 늘 양보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형편이 되면 그때 야간대학이라도 다니겠다며 상고를 간 것입니다. 할머니는 은하가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다며 안쓰러워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때로는 떼도 쓰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할머니를 걱정하고 오빠를 배려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안쓰럽다고 했습니다. “애는 애로 커야 하는데….”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고1 소녀 ‘은하’

은하를 데리고 교회 가까운 곳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넣어 주신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오는 길에 교회에 전화하여 컴퓨터 한 대만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은하의 아빠가 한번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차 안에서 은하에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은하는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할머니가 드시고 싶은 것을 물었습니다. 은하에게 거듭 묻자 은하는 “갈비”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놀라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언젠가 할머니 생신 날 은하가 할머니에게 뭘 드시고 싶은지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갈비”라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하고 은하가 한 말입니다. “그래,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 교회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은하에게 생전 처음 해보는 일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비싼 한우 고기 숯불에 구워먹기….

교회에서 준비한 컴퓨터를 은하에게 전해주자 눈이 왕방울 만해졌습니다. 컴퓨터를 받아들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은하에게 “이것은 ‘아빠’의 선물이야”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없는 사람은 아빠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빠가 있는 사람은 아빠가 한 사람이지만 아빠가 없는 사람은 아빠들이 있습니다. 그 아빠들은 때로는 몇 명, 때로는 몇 십 명입니다. 때로는 아빠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아빠들은 합니다. 은하가 ‘나에게는 아빠들이 있어’라고 생각하며 아빠의 선물을 받은 이 밤에 행복하게 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하는 아빠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예쁘게 잘 자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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