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용의 땡큐에세이



요즘 어린아이가 쓴 시 한 편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제목이 “아빠는 왜?”인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땅의 많은 아빠들에게 존재의 상실감을 맛보게 하는 씁쓸한 내용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엄마가 자전거 사줬어!” 그 말을 듣고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는 아빠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산 건데, 엄마가 사줬다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준 건데, 엄마가 사줬다니!

이 시를 쓴 아이가 아직은 아빠가 왜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존재이든 그것의 진짜 가치는 그것이 사라져 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한 달 가까이 눈병이 나서 고생을 했다. 눈이라는 것이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되는데, 그것이 고장이 나니 기능이 80%는 떨어지는 것 같다.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느 날 저녁 염증이 심해져 고통 속에서 긴 밤을 지새워야 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어디 눈만 그렇겠는가?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온몸 전체가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이든 그것이 정상적으로 있다는 것, 과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동안 밤늦게까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자주 혹사시켜 온 눈을 앞으로는 잘 대접해 주려고 한다.

평소 특별히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고마운 존재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부모님과 아내, 자식들, 그리고 형제 자매들, 당장은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그 존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나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삶을 내버리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그들이 그토록 절망하는 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기댈 존재가 옆에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나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나도 살고 그도 산다.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나도 살고 그도 산다. 그대 있음에 나도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