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1개 양로병원 주인 한정희 회장 이야기


삶의 빛깔이 달라 보였다. 어디서 나오는 열정인지 지치지 않는 힘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잠언이다. 그가 가진 돈도 명예도 사업도 모두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가치가 다르다. 그가 파이를 키우는 이유가 하나님의 사람답다.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11개의 양로병원과 2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베벌리 힐스에서도 가장 값진 집을 가지고 있는 한정희 회장이지만, 36년 전에는 한국을 떠날 때 가져온 1,200달러가 재산 전부였다.

한 회장은 자기 재산을 계수하지 않는다. 그에게 ‘돈’은 종잇장에 불과하고,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라 여긴다.

그가 지금도 놀라운 열정을 불태우며 일터의 파이(π)를 키워가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π를 키워 더 크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생활 속에서 체험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샘솟듯 생각나서 폭포수와도 같은 에너지를 분출하며 살아가는 한정희 회장(62세)을, 오월 햇살이 눈 부시던 날,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 그의 저택에서 만났다.


01 달랑 1,200불 들고 건너간 미국생활

'베벌리 힐스'의 저택은 풍요를 누리고픈 사람들에게 ‘꿈의 궁전’이다. 잘 가꾸어진 6에이커(7,300여 평) 대지 위에 840평에 달하는 저택은 돈이 있다고 마련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오로지 열정과 소명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36년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더 이상 힘쓰고 애쓰지 않아도 평탄하고 안락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침대머리에 수첩을 두고 잠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끝없이 일을 확장해 나간다. 가족들(남편과 아들 둘)도 한 회장의 분수같이 솟아오르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혀를 내두른다.

간호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공부와 일을 겸해야 했던 이민 초기, 야간근무로 하루 16시간씩 죽도록 일하면서 침대도 없는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어렵게 살던 미국생활은 그가 꿈꾸던 생활이 아니었다. 차가 없어 걸어 다니던 새벽 퇴근길에는 지치고 곤고하여 눈물이 마를 줄 몰랐다. 그러나 꿈을 잃지 않았다. 이렇게 살려고 고국을 떠나온 게 아니다. 시간당 2.5달러 노동자 통장에 800달러밖에 없는 처지에도 눈물을 훔치며 “얼마나 마련하면 이런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까?” 늘 생각했다.


02 “열릴 때까지 두드립니다!”

간호사 자격시험에서 낙방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한다는 생각으로 대들었다. 그때 그녀의 기도는 하나였다. “주님!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겠습니다!”

‘안된다’ ‘못간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 없다. 죽을 각오로 하면 안 될 일이 없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다. 도와달라고 기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해야 한다. 나서야 한다! 생각을 열면 뭐든지 된다. 머리와 손만 있으면 어떤 상황이든 헤쳐나갈 길이 보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건 없다. 어떻게든 등불이 되어야 한다. 이게 한정희 회장의 인생철학이다.


03 “한국 사람도 당신 같은 사람 있었소?”

시간제 아르바이트 간호사였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에 대한 소명감을 갖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했다. 병원주인인 유태인에게, “한국사람도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다”는 말을 들으며 일했다. 미국사회에서 유대인에게 인정받으면 사업에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그래서일까, 19년 전 우여곡절 끝에 모아둔 5,000달러로 싼타 모니카 소재의 한 양로병원을 기적적으로 인수했다. 환자가 없어 폐허가 돼 가는 양로병원을 인수하여 명성을 높였더니, 주정부에서 운영이 어려워지는 양로병원을 맡기기 시작했다. 환자가 없어 문 닫을 위기의 병원도 한 회장이 인수하면 줄을 서야 하는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어떤 때는 한꺼번에 병원 셋을 인수받기도 했다. 매년 가장 좋은 양로병원상(Award)을 받는다. 그러자니 역경도 많았고, 전쟁 아닌 전쟁 속에 살았다고 토로한다.

이제 양로병원 운영에 있어서는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정부가 인정하는 최상의 선수가 됐다.


04 축복은 거저 오는 게 아니다

사업이 번창한다고 매사가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미국경제가 어려운 터널에 들어갈 때, 한 회장도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큰 배는 큰 풍랑을 만나게 마련이듯이 지난 4년 동안 그 고비를 넘기는 데 죽을 것 같은 힘겨운 시기를 지났다. 그 기나긴 터널 속에서도 본질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봄이 오고 무성한 여름이 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자살하는 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만 했다.

“축복은 거저 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할 일을 다 해야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겁니다. 그게 축복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어떤 등불이 될 건가를 늘 생각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십니다.”


05 “양로사업으로 부자 되는 것은 죄악”

앞으로도 라스베이거스에 3-4개의 양로병원을 더 지을 계획이다. 또 미국 땅에서 양로병원을 넘어 종합병원을 준비 중이다. 한국 땅에도 양로병원을 준비 중이다. 종합병원을 세우고 그 수익으로 한국에 장학사업 고아원 사업, 그리고 많은 손길이 필요한 사업에 에너지를 나누어 줄 작정이란다. 베벌리 힐스의 저택도 이 큰 사역을 위한 도구로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는다. 그는 이미 고려대학교에 한정희 장학금을, 고향 여주 모교에도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리저리 나누고 섬기는 데 기쁨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나누고 싶은 곳, 나누어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양로병원으로 부(富)를 쌓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죄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일을 통해 파이를 키울 수 있을 뿐입니다. 키운 파이로 더욱 선한 일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합병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회장의 꿈과 열정은 여기서도 머물지 않는다. 어디까지 그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펼쳐 갈지 알 수 없다. 그를 움직이시는 하나님만이 알 뿐이다. 그러나 한 회장은 끝까지 한 사람의 간호사이고,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24시간 지킴이로 산다. 사람을 행복하게 살리는 사명자임을 잊지 않을 것이라 강조한다.


06 껍데기는 언제나 껍데기일 뿐

11개 양로병원에 2,000여 명의 직원을 둔 한 회장은 그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성실한 직원이 누구인가 늘 살핀다. 그들이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누가 진짜인가 살핍니다. 껍데기는 언제나 껍데기일 뿐입니다. 주인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어느 자리에서든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주인의식을 가지고 성실과 정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들과 가족이 되어 그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고 그들의 힘겨움이 내 숙제가 되는 거지요. 그들 모두 영혼과 육체가 함께 부자가 되는 것이 또 하나의 꿈입니다.”

그가 미국생활 초창기에 양로병원 간호사로 일할 때, 그냥 일꾼으로 일한 게 아니라, 늘 주인의식을 갖고 일했기 때문이다. 주인이 자리에 없을 때 문제가 생기면 주인처럼 대응하고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그 주인이 되어 있던 경험을 했기에 더욱 주인의식을 갖고 성실히 일하는 직원을 마음에 담고 있다.

“무엇이든 진정코 원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열정과 실행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열정으로 질주하는 불도저처럼, 한정희 회장은 푯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를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어떻게, 어디까지 이를지 기대가 된다.


박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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