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5월 대화모임

 

<아름다운동행> 5월 월례 조찬대화모임이 5월 26일 아침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수와 진보, 갈등을 넘어 공존으로’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모임에서는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와 박명철 <아름다운동행> 편집장이 각각 발제했다. 발제 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한편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과, 나라 사랑이 하나님 사랑을 앞설 수는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발제 1=최성규 목사

신앙인은 애국자여야 한다

성경 인물은 모두 신앙인이자 애국자이다. 우리는 성도이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신앙인이어야 한다. 애국신앙인의 모습은 이러해야 한다.

첫째,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정직한 다윗이 지도자로 있을 때 이스라엘은 가장 흥했다. 아브라함 링컨의 별명은 ‘정직한 에이브’였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며 그를 통해 한 국가공동체를 복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정직한 사람이 곧 애국자이다.

둘째,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애국자이다. 권리보다 의무가 먼저이다. 권리만 주장하면 사회는 시끄럽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인데 민주만 두드러지고 공화는 부족하다. 공공의 선을 생각하는 공화주의가 필요하다. 바울도 주님을 위해 권리를 포기했다. 책임은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소중하다.

셋째, 연합하는 것이 애국이다. 우리 민족은 나라가 어려울 때 모든 것을 초월하여 연합하였다. 연합은 곧 조화로움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연합은 예수님의 소원이며 성령의 역사이다. 나만 두드러지는 것은 옳지 않다. 연합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넷째,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애국이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경시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했고, 하나님도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땀이 곧 이 나라의 희망이기도 하다.

다섯째, 눈물로 사랑하는 것이 애국이다. 사랑할 때 눈물이 난다. 눈물 흘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신앙인이 곧 애국신앙인이다.

여섯째, 나누며 사는 것이 애국이다. 신앙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일이다. 애국도 나라와 더불어 국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일곱째, 실력을 향상하는 것이 애국이다. 실력은 학력과 다르다. 성실과 유능이 실력이다. 인격이 겸비된 능력을 의미한다. 다니엘이 그 표본이다.

여덟째, 애국자는 전도한다. 하나님나라에도 애국이고 대한민국에도 애국이다. 김구 선생은 경찰서를 하나 세우기보다 교회를 열 개 세우는 게 낫다고 했다.


◆발제 2=박명철 편집장

진보와 보수, 갈등을 넘어 공존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이념 갈등은 해방 이후의 좌우대립 상황을 반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6·25 휴전 이후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이런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민통합이라는 근대국가의 기초를 다질 수도 없고, 나아가 국가 공동체의 진보 또는 선진국가의 가치를 공유할 수도 없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 헌법가치를 공유하면서 협력하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론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화해와 평화를 존재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 교회가 이러한 갈등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 사회공동체의 현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슴 답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보혁갈등이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제로섬게임’에 머물러 있는 이상 결코 소통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쪽이 전부를 가지려는 이 폐쇄적 독과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공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보수든 진보든 폐쇄적 독과점, 곧 ‘그들만의 리그’로는 한 공동체를 리드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 그들은 고립을 자초하여 자멸하고 만다.

한국교회는 때로 보혁갈등의 ‘이중대’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목회자의 보혁 성향을 설교와 목회에 가감 없이 반영하는 어리석은 행태를 보여주거나, 교회가 진보와 보수의 극단에 서서 진보와 보수의 본질을 훼손하는 성향까지 보임으로써 교회 밖은 물론 교회 안에서조차 거친 저항을 받고 있다.

주님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흑 아니면 백이다”라고 가르치는 현상은 공존의 희망을 일구고자 하는 한 공동체의 노력을 짓밟는 무지의 소치로도 비친다. 흑 아니면 백이라고 할 때, 그것은 진리에 대한 성도의 선택을 의미할 뿐, 언제나 공존을 뿌리치고 모든 것에서 갈등하라는 가르침이 아닐진대 강단의 무지와 인문학에 천박한 성장논리들이 교회를 온통 장사치들의 무질서한 공간으로 훼손시켜온 셈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교회만이라도 그 본래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낸다면 갈등은 훨씬 줄어들 것이며, 공존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텐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보수 진보 갈등을 우려하기 이전에 한국교회가 가진 보수 진보의 이중대 성향을 도려내고 제자리를 잡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동행> 6월 조찬대화모임 안내

주제 : 추후 발표
일시 :6월 30일 아침 7시
장소 :시청 앞 플라자호텔 2층 뷔페식당
참석대상 : <아름다운동행>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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