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씨를 뿌리는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지금도 평화의 섬 제주도를 지키기 위해 강정 마을에서 수고하고 있는 이들을 비롯해 정말 많은 평화의 일꾼들이 수고의 땀을 흘리고 있다. 좋은 세상의 씨를 뿌리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장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스스로 황폐해지지 않는 것이다.


# 호명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플러스 유인성의 사람이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를 만나면 제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마이너스 유인성의 사람인데, 그는 만나는 이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불어넣고, 결과적으로 맥이 빠지게 만든다. 오랫동안 그런 이들과 함께 지낸 사람의 특징이 있다. 감사할 줄 모르고, 표정이 어둡다.

예수님은 가장 대표적인 플러스 유인성의 사람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마치 촉매처럼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물론 그 변화의 가능성은 각 사람 속에 내장되어 있었고, 주님은 그것을 발견하고 호명해주셨을 뿐이다. 주님은 갈릴리 호수의 어부 시몬을 불러 베드로가 되게 하셨고, 시대에 대한 염려로 의기소침해졌던 나다나엘에게서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을 보아내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아내는 데 명수셨다. 우리는 그렇지 못한데, 싫고 좋음의 척도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을 파악할 때가 많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낭비이다. 적절한 습도와 온기를 만나지 못해 그렇지 정말 큰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현재 모습만 보고 그를 규정해버린다.

말이 올가미가 될 때가 있고, 날개가 될 때도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떠올려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하략)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이름을 불러줌’이다. 시인은 누군가가 자기를 적절한 이름으로 호명(呼名)해 주기를 소망한다. 호명해 준 그에게로 가 꽃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만나는 이들의 가슴에서 무엇을 호명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탐욕스럽거나 사나운, 혹은 비열한 존재를 호명하고 있는지? 아니면 따뜻하고 온유하고 덕스러운 존재를 호명하고 있는지? 


# 파종

이러한 호명행위는 일종의 파종행위와 같아서, 우리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만나는 이들의 가슴에 뭔가를 심고 있다. 그것이 말일 수도 있고 표정이나 몸짓일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설명하신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은 씨앗의 성장과정을 차례로 열거하셨다.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예수님은 왜 굳이 이렇게 세세히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아마 생명의 원리를 사람들에게 설명하셨던 게 틀림없다. 급하다고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평범하지 않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발설하실 때는 로마제국의 착취와 학정으로 민심이 들끓고 있던 때였다. 과격파들이 득세하였다. 그들은 저항운동에 동조하지 않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향하여 반동으로 몰아댔다. 그런데 예수님은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게 생명의 원리를 꿰뚫어보셨다. 역사는 퇴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게 주님의 확신이었다.

평화로운 세상, 사람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은 더디더라도 반드시 온다. 그래서 평화로운 삶은 우리가 성취해야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평화의 섬 제주도를 지키기 위해 강정마을에서 수고하는 이들을 비롯해 정말 많은 평화의 일꾼들이 수고의 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좋은 세상의 씨를 뿌리는 이들이다.

평화의 씨를 뿌리는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당장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스스로 황폐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 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 혹은 뜻이라는 씨가 뿌려져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씨를 품은 사람으로 우리는 희망과 사랑을 파종하는 착한 농부들이 되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에 평화와 사랑의 씨를 뿌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척박한 역사 속에도 같은 씨를 뿌리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그렇게 평화를 살아내야 한다.

농부들이 논 일로 밭 일로 분주한 철이다. 우리도 씨 뿌리는 자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뿌리는 씨앗이 우리 혹은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이룰 것이다. 더디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도 기뻐하며 우리는 씨를 뿌린다. 주님은 이렇게 씨 뿌리는 우리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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