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교육자

욥기 35:9~10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 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

찬송 433장(통 490장)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 중의 하나가 교육입니다. 구약의 명령도 교육이며(신 6장) 신약의 명령도 교육(마 28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육적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교육은 대물림의 운송수단입니다. 부모의 믿음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고 교리교육이나 선교, 모든 교회의 활동은 교육을 통해서 전달이 됩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 잘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가장 힘든 사람은 책을 딱 한 권 읽은 사람입니다. 그 책이 전부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지식이 전부이기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남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자기의 모양을 갖춰버리기에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알고 맙니다. 이런 사람에게 발전이 없습니다. 그의 믿음이나 지식이 무섭습니다.

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우리를 훈련시킵니다. 그분의 교육은 밤중에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그것이 인생 최고의 교육입니다.

잘 가르치기 위해 잘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교육은 입에서 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서 가슴으로 갑니다. 보여주는 교육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적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십계명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온 몸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변했습니다. 단순히 교리교육이나 성경교육이었다면 400년 동안 애굽에 물들었던 이방문화와 믿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삶을 통해 가르치는 교사들이 되십시오.

서로 간에 배우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가르치려 들려고만 했습니다. 배움이 없는 사람들을 깔보았습니다. 더 이상 발전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계속 배웠습니다. 서로에 대해 배웠습니다. 서로의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고자 했기에 신뢰공동체가 되었고, 용서가 있고 서로에 대한 존경의 공동체였기에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모두가 우리의 스승입니다. 서로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가 때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덕(德)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영향력입니다. 


예수 한 가족

마태복음 12:48~50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찬송 220장(통 278장)

원래 기독교는 건물교회가 아닙니다. 유대교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했지만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이런 기독교가 로마의 바벨론종교와 혼합되면서 신전(神殿) 종교로 발전했고 이것이 가족적인 분위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예수 안에서의 참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예수가족의 구성원은 혈통이 아니라 고백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바리새인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세력”(마 12:24)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소문에 육신의 형제들이 걱정이나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는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예수가족은 육신(혈통)이 아니라 신앙고백으로 이루어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가족의 관계는 삼위 하나님이 모형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세 분이 한 하나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면서 각각 개별적으로 사역하시고 협동하십니다. 이 관계가 너무너무 아름답고 균형을 이룹니다. 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존경합니다. 서로와 유기적인 좋은 관계를 갖습니다. 각자의 사역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역은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갑니다.

우리 가정도 삼위일체의 유기적인 관계로 맺어질 때 진정한 예수가족이 될 것입니다.

예수가족의 관심은 약한 자를 향해야 합니다. 우리 몸에서 개인적인 관심은 어디입니까?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약한 곳? 물론 평상시에는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아픈 곳이 생기면 달라집니다. 아픈 곳이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눈이 아프면 눈이 관심사이고 가슴이 아프면 가슴이 관심사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하나의 몸입니다. 가정도 가장 약한 자들에게 형제의 관심이 모아져야 합니다. 교회의 관심도 아픈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강자들이 약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치료해서 건강한 대열에 합류시킬 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약한 형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이 축복의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도움말씀=강정훈 목사(늘빛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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