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과 있음, 적음과 많음의 차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어머니와 등불 하나 들고 아랫마을엘 다녀오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한두 걸음 앞밖에 비춰주지 못하는 아주 희미한 등불이지만, 캄캄한 밤길에 그 작은 등불의 소중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따금 멀리 아랫마을에서 누군가 역시 작고 희미한 등불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 누구일까? 드디어 만나면 서로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우리가 든 등불은 한두 걸음밖에 못 비춰주는 것 같은데, 상대방이 든 등불은 우리에게 또렷이 보이니 참 신기한 일이다. 군대에서 야간 훈련 중에 담배를 절대로 피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아마 이런 것이리라. 담뱃불이 적의 전투기에서도 보인다던가?

더 놀라운 것은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그 상태로 오래 있다 보면 희미하게나마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밝은 곳에 있다가 캄캄한 곳으로 가면, 처음에는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익숙해지면 조금은 보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어딘가에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름을 현상하는 암실에 들어가 보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수(數)의 세계에서 ‘1’과 ‘1,000’ 사이에는 ‘999’라는 큰 차가 있다. 그런 반면 ‘0’과 ‘1’ 사이에는 불과 ‘1’의 차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1’과 ‘1,000’ 사이가 ‘0’과 ‘1’ 사이보다 999배나 큰 차가 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1’과 ‘1,000’ 사이는 ‘적음’과 ‘많음’의 차이지만, ‘0’과 ‘1’ 사이는 ‘없다’와 ‘있다’의 차이기 때문이다.
‘없다’와 ‘있다’의 차이는 참으로 엄청나다. 내게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조금 있다’는 것과 ‘많이 있다’는 것의 차이와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는……. 내가 가진 등불이 작고 희미해 보여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크고 밝아 보일 수 있다. ‘조금 있음’에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를 ‘0’에 놓아야 자족(自足)과 감사가 보인다. 감사하는 인생에 암실이란 없다. 아주 작고 희미한 등불만 있어도 우린 캄캄한 밤길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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