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8분'을 반복 경험하며 사건을 해결한 콜터 대위에게


당신이 소스 코드를 통해 되돌아갈 때마다 조금씩 진화해간 문제 해결 방식이 영화 말미에서 예기치 않은 반전을 낳았듯, 그 일상의 발전과 성장이 쌓이는 어느 순간 성화(聖火)의 반전이 우리에게도 찾아오겠지요.


콜터 스티븐슨 대위,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사는 당신에게 실제 세계에서 쓴 편지가 배달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소스 코드>에서 나는 당신의 활약상을 인상 깊게 보았지만, 우린 서로 볼 수도, 만날 일도 없을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전투헬기 파일럿인 당신은 어느 날 기차 안에서 깨어납니다. 이런, 여기가 어디지? 대체 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야? 군복은 어디 가고 남의 옷을 입고 있지? 헬기는? 우리 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당신 눈앞에는 웬 낯선 여성이 마치 당신을 아는 것처럼 미소 지으며 바라봅니다. 아니, 이 여잔 누구야? 왜 날 보고 웃는 거지?

기차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거울을 보는 당신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오마이갓! 이, 이럴 수가! 이건 내 얼굴이 아니잖아! 이 남잔 또 누구야? 아니, 아니, 난 누구지?

지금 당신은 폭탄 테러를 당하기 8분전의 시카고행 열차에 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재연되는 가상현실입니다. 죽은 승객의 뇌에 기록된 마지막 8분간의 잔존 기억 속으로 당신(의 의식)을 들여보낸 건 ‘소스 코드’(source code)라 불리는 시공간 이동프로그램이지요. 죽은 사람의 뇌는 죽기 전 8분 동안의 기억을 보존하는데 이는 마치 전등이 꺼진 뒤 일정 시간 빛이 남아 있는 잔광 효과와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 소스 코드 개발책임자 러틀리지 박사의 말을 기억하겠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열차 폭발 전의 8분 안에 범인을 알아내야 했지요. 그래야 이후 일어날 끔찍한 연쇄 테러를 막을 수 있으니까요.

범인을 알아내기까지 당신은 소스 코드를 통해 계속 열차 폭발 전 8분간의 시공간으로 보냄받습니다. 열차 폭발 전 마지막 8분을 계속 반복 경험하는 셈이지요. 무기력한 첫 실패 후 동일한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 경험하며 당신의 문제 해결 방식과 능력은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더 나은 쪽으로 진보 혹은 발전해 갑니다. 앞자리의 크리스티나에게 도움을 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 뿐 아니라, 승객들의 세세한 특징을 익혀가며 실마리를 찾아갑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테러범을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미 일어난 열차 테러 사건 자체를 되돌리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신이 뛰어다니는 시공간이 ‘기억’ 속이라는 데 있습니다.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을 뒤집을 수는 없는 거지요.

콜터 대위, 사실 평행우주론 같은 영화의 과학적 배경에 나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열차 테러의 ‘마지막 8분 미션’에 거푸 실패하면서도 다시 뛰어들어 한발짝씩 문제 해결에 다가서는 그 전진이야말로 제겐 의미심장했고 이 하이테크 SF영화에서 가장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당신처럼 영화 밖의 우리도 예외 없이 인생에 내재된 소스 코드에 따라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가족과 일터, 일상의 영역은 거의 예외 없이 한정된 범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소스 코드>에서 당신이 계속 되풀이 경험하는 열차 폭발 전 8분처럼, 우리 일상도 죽음 전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퀀스와 같습니다. 아침이면 눈을 떠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기까지,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당신이 열차 안에서 테러범을 찾기 위해 혼신을 다하듯, 우리 역시 이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전심으로 살아가야 할 미션을 부여받았습니다.

당신네 말로 ‘데일리 라이프’(daily life) 곧 일상은 한자로는 날 일(日)과 항상 상(常)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상’(常) 자에는 떳떳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매양 도돌이되는, 특별할 것 없는, 그래서 때로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는 일상을 거푸 실패하면서도 조금씩 발전해가는 것이야말로 떳떳한 삶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걸까요?

당신이 소스 코드를 통해 되돌아갈 때마다 조금씩 진화해간 문제 해결 방식이 영화 말미에서 예기치 않은 반전을 낳았듯, 그 일상의 발전과 성장이 쌓이는 어느 순간 성화(聖火)의 반전이 우리에게도 찾아오겠지요. 우리가 서로 만날 순 없겠지만, 당신의 세계가 오래도록 안녕하길, 당신과 크리스티나의 사랑이 길이 무궁하길 빌며 이만 줄입니다. 

※ <소스 코드>, 제이크 질렌할(콜터 대위), 미셸 모나한(크리스티나), 베라 파미가(굿윈) 주연 / 던칸 존스 감독, 2011. 5. 4.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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