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을 조선에 묻은 아더노블선교사 이야기


우리 아기 메이가 3주 전, 이질에 걸렸다. 이 사랑스럽고 잘 참는 꼬마 환자는 몹시 쇠약해졌다. 난 밤마다 아이 곁을 지켰다 (…) 조선과 조선인은 우리에게 지독하리만큼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8월 18일 목요일 밤 9시경 천사들이 왔다.


 
사람의 살고 죽는 것을 누구라도 간섭할 수 없다. 다윗은 밧세바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죽게 되었을 때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했지만 이레 만에 죽었다. 그는 아이가 살아있을 때는 금식하고 울었다. 혹시 여호와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죽었다. 그러자 마음을 돌려서 “내게로 돌아올 수 없지만 장차는 내가 그에게로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서는 슬픈 이별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에 왔던 어떤 선교사들은 가족을 이 땅에 묻는 큰 슬픔을 당했다.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 아더 노블(William Arthur Noble)도 두 아이를 잃었다. 노블 부부는 평양으로 가기 위해 제물포에서 증기선을 탔고 대동강에 들어가서도 나룻배를 두 시간이나 탔다.
부인 매티 노블의 일기다.
아기는 서울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팠고, 여행길에 악화되었다. 한동안 조금씩 회복되었으나 최근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려 (…) 비쩍 말라 뼈 골격이 낱낱이 드러날 정도다. 아기가 곧 회복되길 애타게 바라고 기다린다. 병명은 만성설사다.

둘째 아들 시릴(Cyril Drew)이 이렇게 아팠던 때가 1896년 10월 20일이었다. 그리고 11월 4일 숨을 거두었다.
아기는 죽어가고 있었다 (…) 아더가 아기를 좀 안아주자 울어댔다. 난 아기를 팔에 안고 내 무릎 위에 뉘였다. 우린 숨죽이고 아기의 거친 호흡을 지켜보았다. 은탯줄이 풀리고 금사발은 깨어졌다. 우린 널 시릴이라 이름 지었지. 우리 사랑하는 어린 아들 시릴, 네가 오래 살며 위대한 일을 하길 바랬지. 이젠 천사들이 널 데려간 후, 네가 없는 우리 집은 너무 외롭구나. 그러나 아기야, 너를 향한 사랑은 우리 가슴 위에 새겨있단다. 하나님께서 우릴 본향 집에 데려 가 너와 함께 살게 하실 때까지.

이질로 출생 1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2년 후, 그러니까 1898년에는 아들 메이(May Mildred)도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기 메이가 3주 전, 이질에 걸렸다. 하루에 30번, 28번씩 변을 보았다. 이질은 서서히 설사로 바뀌었고 지금은 합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 사랑스럽고 잘 참는 꼬마 환자는 몹시 쇠약해졌다. 메이는 말라리아가 끔찍하게 만연한 이 집에서 말라리아도 같이 걸렸다 (…) 난 밤마다 아이 곁을 지켰다 (…) 조선과 조선인은 우리에게 지독하리만큼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8월 18일 목요일 밤 9시경 천사들이 왔다.

그 어린것들은 둘씩이나 평양에 묻었다.
두 아이를 데려가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매티 노블을 살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1912년, 안식년을 지내기 위해 3월 19일 평양을 떠났다. 시베리아와 유럽을 기차로 횡단하여 런던에 도착했고, 수요일에는 미국으로 가는 타이타닉을 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행 한 사람이 중국에서 분실한 트렁크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함께 머물게 된 매티는 타이타닉에 승선하지 못하고 토요일 출발하는 모레타니아 호를 타기로 했다. 현대과학을 자랑하던 타이타닉은 항해 중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고 말았다. 승객 2206명 가운데 1503명이 희생된 대형 해상사고였다.

미국에서는 그들 부부가 죽었을 거라며 아연실색했고, 조선에 그렇게 필요로 하는 선교사 가족을 죽게 버려두는 하나님은 신뢰할 수 없다면 실족할 뻔했다는 자매도 있었다. 그들이 사소한 일로 인해 위기를 피한 것도 은혜였다.

아들과 딸을 조선에 묻고는 “조선과 조선인은 우리에게 지독하리만큼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고 마음 아파했던 노블 부부.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의 영혼들을 위해 그들 항해 길을 잠시 가로막으셨던 것 같다. 전도자로서 가야 할 남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두 아들을 화재로 잃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 가운데 이 찬송시를 썼던 벤자민 슈몰크 목사님의 고백(찬송가 549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권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눈물로 불러야 할 찬송가이다.


▶인용된 매티 노블 선교사의 일기는 좋은씨앗이 출판한 책 <매티 노블의 조선회상>에서 옮겼습니다.


황영준 목사
광주동산교회를 30년 동안 목회한 뒤 원로목사로 은퇴하였다. 현재는 여수 애양원과 소록도 교회 등을 찾아서 섬기고 있으며 전국의 농어촌교회를 찾아 살아 있는 역사를 쓰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