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10.31 목 16:39
 
> 뉴스 > 특집/기획 > 04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부모니까…그러니까 해선 안 되는데…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108호] 2011년 05월 22일 (일) 한그루 @


이성호 교수의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21가지 말>(이너북스)을 서점에서 골랐다.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제목이었는데, 이 책을 펴들고선 더욱 좌절하고 만다. 나는 겨우 한 마디 정도만 범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일상에서 되뇌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마음만 먹으면 아이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아이는, 이제 아빠를 멀리한다. 아홉 번 따뜻하고 한 번 차가우면, 아이는 그 한 번을 마치 열 번처럼 기억한다. 밤샘 작업이 있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 아이는 오히려 반기는 눈치다. 참고 참다가 한 번 잔소리를 하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피해 버린다. 대들면 차라리 좋겠는데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안 그럴게” 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나는 아이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 휑한 적막감에 어쩔 줄 모른다. 막혀버린 듯하다.

이제는 두렵다.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두렵고, 지켜보기도 겁난다. 아이와 나 사이에 막힌 담을 느낀다. 이런저런 까닭을 나열해 본다. 15년을 살아오는 동안 아이는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그 벽을 쌓았는지 모른다. 아니 아이가 아니라 아빠가 쌓았는지 모른다. 내 딴에는 친절한 척, 모든 걸 이해하는 척, 뭐든 용서하는 척, 그렇게 좋은 아빠인 척했지만 그 ‘척척’ 하는 행동 속에 거짓이 담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령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I 대화법’이니 하는 고상한 대화의 요령을 실천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 게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너 하나였으면 어쩔 뻔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분명히 내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왔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슬프다는 말이다. 좀 더 확장하면 너 같은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말이다. 세상에,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한 번도 들은 적조차 없는 그 무서운 말을 언감생심 아비라는 인간의 입으로, 터진 입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예민한 아이에게, 제게 닥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도 어려운 아이에게, 그리 말하고 말았다. 뒤주에 제 자식을 쳐 넣어 죽게 만든 그 독한 애비와 무엇이 다른가.

작년에 한 시사 주간매체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절반에 육박하는 49%의 청소년들이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응답했다. 그 중 5%, 그러니까 100명이 다니는 학교라면 5명은 1주일에 한두 번 자살을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세상에…, 누가 뭐래도 이런 세상은 지옥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그 5명에게만 지옥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살충동을 느끼는 까닭을 알아보면 경제사정(22%), 부모님 꾸중이나 잔소리(17%), 가정불화(8%)…, 그러니까 절반 가까운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유로 말미암아 자살충동을 느낀다. 여기에다 성적에 대한 고민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21%까지 더하면 60%에 달한다. 부모가 되어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다. 그리고 그들 속에 아마 나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 있을 게다. 세상에, 아비란 사람이 “너 같은 자식은 낳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면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어찌 죽고 싶지 않았을까.

한심한 노릇이다. 그래서 이성호 교수의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21가지 말>(이너북스)을 서점에서 골랐다.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제목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펴들고선 더욱 좌절하고 만다. 나는 겨우 한 마디 정도만 범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일상에서 되뇌면서 살고 있었다.

“머리는 무거운데 왜 달고 다니냐?”
“이제 방에 들어가서 공부 좀 하지?”
“너도 이 담에 더도 덜도 말고 너 같은 새끼 한번 키워봐라.”
“네가 그걸 한다고?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어쩌면 21가지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해댄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좋은가. 아이 앞에 서기도 두렵고, 차라리 아비란 인간이 자살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스쳐간다. 오히려 더욱 아이 마음을 배려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런 예화가 나온다. 고등학교 다니는 여학생을 둔 엄마가 있다. 주일 아침인데 일찍 일어난 딸이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있다. 엄마가 묻는다.

“너 오늘도 학교 가니?”
“아니요.”
“그럼 벌써 교회 가려고?”
“아뇨.”
“그런데 왜 교복을 입고 있니?”
“그냥, 공부하려고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 다음 엄마 반응부터가 문제다.
“교복을 집에서 입으면 또 빨아야 하니까 그렇지. 아니 집에서 공부하는 데 왜 교복을 입고 난리야?”
그러면 아이가 말한다. 수위가 높아진다.
“엄마는? 누가 난리를 피웠다고 그래? 싫으면 그냥 벗으라고 하지, 난리라니?”
이쯤 되면 갈 데까지 다 간 거다. 그 다음 상황들은 뻔하다.

이성호 교수는 말한다. 이런 경우 엄마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어떤 아이는 교복을 입고 앉았을 때 차분한 마음에서 공부가 잘 되는 아이들이 있다.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공부하다가 교회 가겠다는 아이는 오히려 고마운 아이다. 또 어떤 아이들은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걸 부모들은 쉽게 판단해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아빠처럼. 그래서 “교복을 입고 난리야?” 같은 말이 쉽게 튀어나오는 게다.

아이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게 어려운 건 말해 무엇할까. 모르겠다. 세상에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텐데….. 그러고 보면 나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거나, 알고도 잘못하는 부모들이 많은 얘기다. 그런 부모의 자식들은 슬프다. 옥상에 올라가면 한 번쯤 땅을 내려다보며 뛰어내릴 생각을 잠시라도 품게 된다. 그러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말들은 아이 가슴에 못을 박을 뿐 아니라, 내가 내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때 바로 그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넌 우리 집의 보물이야.”
“우리는 너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단다.”
“그때 너를 낳았으니 망정이지, 안 낳았더라면 어쩔 뻔 했니?”
“너는 너야.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넌 니 방식이 옳다면 그렇게 해. 엄마 아빠가 응원해줄게.”

한그루 객원기자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표지 보기
가을엔 춤을 추라!
친절한 품격, 서대문 안산 자락길
따뜻하고, 바르게
툭툭이 운전사
‘한 사람을 위한 영혼의 안식처’
교회가 찾아주면 월드비전이 돕는다...
진정으로 용서하기
친환경 천연 약제 만들기
어쩌다 나무
“아이들, 기독교육공동체에서 자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