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우리들을 위한 중보



어느 시사주간지의 특집이 ‘노년의 연애’였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년의 어르신들이 데이트를 하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가 다양해지고, 은퇴 후를 보람있게 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문 속 어르신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는데, 그날 저녁 결혼식장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는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망을 봐야 했거든요.

결혼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앞에는 어느 할머니가 앉아 있었고, 홀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잡채를 유독 좋아하시는구나’ 아무 생각 없이 제 음식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잡채를 입에 문 채, 손으로 흘러내리는 당면을 입에 물고, 두리번두리번합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결혼식 옷차림은 아닙니다. 튀지 않으려고, 차려입으셨지만 결혼식에 입고 올 옷은 아닙니다. 아무런 관계자도 아닌데, 그냥 와서 드시는 거였습니다.

이 할머니 계속해서 음식을 실어 나릅니다. 뷔페식당이었던 그곳에서 서너 접시를 후딱 해치우십니다. 알고 보니 가방으로 들어갑니다. 가방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육회입니다. 잡채를 드시며, 망을 보고, 직원이 안 보인다 싶으면 종이컵에 육회를 담아 가방에 넣습니다. 이렇게 수차례, 음식을 실어 나르셨습니다. 가방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렇게 유유히 결혼식장을 나섭니다. 저는 무슨 ‘범죄자’나 본 것처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호들갑을 떱니다. 저의 말을 진중하게 듣던 그 친구 “네가 망봐주지 그랬니?” 합니다. 뭔가에 머리를 맞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할머니 마음 편히 식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직원이 오는지 안 오는지 보느라, 좋아하시는 잡채의 맛도 느끼지 못하셨을 겁니다. 공범으로(?) 붙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망을 봐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만 하고 있었으니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가방에 담아간 음식은 누구를 위한 거였을까요? 육회를 좋아하는 누군가였겠지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일 수도 있고, 삐쩍 마른 손자일 수도 있겠네요. 할머니가 망을 보지 않고, 잔치를 잔치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잔치를 잔치로 즐기지 못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끼니를 때워야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만의 잔치에 취해, 굶는 이들을 외면한 것을 회개합니다. 우리가 치르는 모든 축제와 잔치에,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해주소서.

이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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