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용의 'DID로 신앙하기'



집은 청평이고 연구실은 강남 논현동이라 아침 여섯 시면 집을 나선다. 요즘은 길이 잘 나있어 50분이면 연구실에 도착한다. 출근길의 이 50분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묵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나의 묵상을 도와주는 길잡이는 극동방송이다. 하루를 여는 시간을 아름다운 찬양과 은혜로운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워준다.

오늘은 ‘민들레 국수집’ 이야기가 나왔다. 노숙인들처럼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국수를 무료로 제공하는 가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지만 생색을 내거나, 대충 준비한 한 끼가 아니라 마음을 다한 정성이 담긴 국수 한 그릇이다. 국수 한 그릇에 ‘따뜻한 정’을 듬뿍 담아서 배만 부르지 않고 마음까지 불러서 돌아가게 하는 가게다. 국수집 주인은 가게를 찾는 분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들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뿐 아니라 진정이 담긴 환대를 통해 비로소 마음이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민들레 국수집’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악수를 나눈다. 명함을 교환하고 안부를 묻는다. 언제 식사나 한번 하자며 기약 없는 제안도 한다. 습관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언제부턴가 노력하지 않아도 얼굴과 몸의 근육이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만들어 내는 ‘친절한’ 태도들. 그런데 왜 부끄러움이 느껴졌을까? ‘민들레 국수집’에는 일주일 용돈 2만 원으로 계란 두 판을 사서 기부하는 우체부가 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은퇴한 뒤 여기 와서 설거지를 하며 봉사하고 싶단다. 그의 소박한 마음이 찌들어버린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4: 10~12).

사도 바울은 영광을 사모하기 이전에 고난에 참여하고자 했다.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고자 했다. 나는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피해 그 영광만 누리려는 게 아닐까? 나는 누구를 대접하며 사는가? 나의 국수는 무엇이고, 나의 손님은 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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