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최은창의 ‘인생 둘레길’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암수술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데, 이는 작은 잘못 하나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암수술은 단 한 번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과 같다.


암수술의 가장 보편적이고 우선된 목표는 암을 완전하게 절제하여 몸 밖으로 떼어내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암을 완전하게 절제하려면 우선 암이 어느 곳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암이 덩어리를 형성하는 경우에는 만져보고 종양의 범위를 알 수 있지만, 암은 종괴의 형태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피부 혹은 점막 깊숙이 자라 들어가기도 하여 만지는 것만 가지고는 그 범위를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종양의 주변부위는 몸의 세포와 반응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어서 벌겋게 발적이 된 부분이 있기도 하고 헌 부분이 있기도 한데 이런 부분은 종괴를 형성하지 않아 단단하게 만져지지 않지만 모두 암세포가 이미 침윤해 있는 부분으로 암이 없다고 간과하기 쉽다. 또한, 아무리 정확한 영상진단 방법을 써도, 현재의 방법으로는 아직 암세포 하나하나의 위치를 알 수 없다. 위양성, 위음성의 결과도 있기 때문에 암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암수술을 할 때 암종뿐 아니라 암세포가 주변으로 파고 들어갔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어느 정도의 정상조직을 포함하여 절제한다.

이렇게 암 주변에 있어서 덩달아 억울하게 절제되는 정상조직 부분을 안전 변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안전 변연을 얼마나 넓게 해야 하는지는 종양의 형태에 따라, 부위에 따라, 궤양의 유무, 세포의 공격성에 따라, 재발한 예인가 아닌가에 따라 등 각기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으니 완전하게 종양을 절제하는 것은 많은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

암 절제술을 할 때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남은 기관 혹은 조직의 기능이다. 암의 재발이 두려워서 지나치게 많은 주변 조직을 들어낸다면 암을 완치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결과적으로 주변의 정상 조직을 불필요하게 절제하게 되므로 기능 장애가 커지게 된다. 그렇다고 기능 장애가 무서워서 암 주변을 조금만 포함한다면 재발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암 절제술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그것도 하나씩 잡는 게 아니라 둘 다 동시에 때려잡아야 한다.

암을 완전히 절제하면서도 또한 불필요한 정상조직의 희생과 이에 따른 기능장애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병기, 같은 종류의 동일한 암이라 할지라도 우리 얼굴처럼 모두 제각기 다른 암을 언제나 적절하고 알맞게 수술한다는 것은 많은 지식과 경험과 아울러 거의 예술의 경지를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암이 생긴 부분, 즉 암의 원발부위를 예술적으로 완전하게 절제한다고 해도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암이 우리 몸의 다른 부분으로 퍼져 나가는 문제가 남아 있다. 암세포는 사람처럼 후손이 생기고 그 아이가 커서 분가하여 이사를 하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이사한다. 림프관을 타고 주변의 림프절로 가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림프절전이가 한가지이고 혈관을 타고 멀리 가서 다른 장기로 전이를 일으키는 원격 전이가 한 방법이다. 림프절전이는 기차를 타고 국내의 도시로 이사 가는 셈이고 원격전이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이민 가는 셈이다.

림프절 전이는 원발부위 못지않게 중요하거나 오히려 원발부위의 치료보다 더욱 중요한 경우도 많다. 수술로 치료할 때 전이 림프절은 물론 전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림프절도 모두 포함하여 떼어 낸다. 이 림프절 절제술은 원발부위의 수술과는 완전히 양상이 다르다. 원발부위수술은 가능한 한 충분히 정상조직을 포함해야 하고, 떼어낼 때 암세포가 수술부위에 묻거나 흘리지 않도록 두부모 자르듯이 넓게 주변조직을 포함해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림프절 절제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특히 목의 림프절 절제술은 지뢰밭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확인하면서 전진하듯이 림프절이 있는 조직만 정확하고 안전하게 떼어 내야 한다. 왜냐하면, 림프절은 주로 큰 혈관과 신경 주변에 있으므로 원발부위와 같은 방법으로 수술했다간 목에 실타래같이 얽혀 있는 중요한 혈관과 신경을 다치게 되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목 속에는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모든 중요한 장기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이 중요장기를 피해 림프절과 주변의 연조직만 깨끗이 떼어내야 한다.

엔진룸을 열면 손 하나 들어갈 틈 없는 자동차에서 모든 부품을 그대로 놔둔 채 수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목 한쪽에 약 50여 개의 림프절이 있는데 정상조직은 그대로 놔둔 채 림프절들을 가능한 한 모두 들어내야 한다. 일일이 림프절을 보고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림프절이 있는 연조직을 중요조직에서 분리 박리해 낸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합병증 없이 빠른 시간 안에 완전한 림프절 절제술을 할 수 있도록 숙련이 되려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된 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경험을 쌓아야 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암수술에 관한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원발부위 암 절제술과 림프절 절제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어떤 예든지 문제없이 수술하려면 이 연단의 시절을 충실히 겪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암수술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데, 이는 작은 잘못 하나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암수술은 단 한 번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과 같다.
 

나를 도구로 사용하는 절대자의 섭리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두려움이 없어지고 관록도 붙어 수술을 척척 해내게 되었을 때가 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건방짐이 따라오는 것이다. 자신감 뒤에는 꼭 교만이라는 친구가 뒤따라 다닌다. 암수술 중 힘들고 난이도가 큰 예들을 잘 치료하면 자연히 자긍심과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마음속에 ‘내가 최고야,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나 말고 누가 이걸 고치겠어’라는 악마의 못 된 생각이 들어온다. 그럴 때 이런 환자가 반드시 나타난다. 초기 중에서도 초기인 환자라 거의 완치를 장담하고 수술을 했는데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여러 곳에 손 쓸 수도 없게 재발하여 나타난다. 이런 환자도 온다. 너무 진행되어 별로 완치의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고 전이림프절도 무수히 많고 원발부위의 종양도 너무 커서 수술하면 기능장애도 상당할 것 같아 기대하지 않고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5년을 지나 깨끗하게 완치가 되는 경우다.

이 환자 분들을 통해 외과의사들은 겸허하게 칼을 내려놓는다. 교만하고 뻣뻣했던 목이 수그러질 수밖에 없다.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절대자의 섭리와 그 손길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한 분 한 분 온 힘을 기울여 수술하고 결과는 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지식을, 모든 의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암을 치료해 본 외과의사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체를 들여다보는 의사들도, 병을 고치는 의사들도, 그 오묘한 몸속의 조화와 섭리를 알면 알수록 더욱 하나님의 존재가 뚜렷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이유는 네 몸을 들여다보고 네 몸 안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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