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인간을 향한 소통 방식을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내 이름은 칸>샤룩 칸(리즈완 칸) / 까졸(만디라) 주연, 카란 조하르 감독, 2011년 3월 24일 개봉.

무슬림들에게 흔한 ‘칸’(Khan)이라는 이름 때문에 샘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만디라는, 모든 미국 국민들에게, 심지어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내 이름은 칸이며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하라고, 그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칸을 매몰차게 몰아붙입니다. 만디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가슴에 새긴 칸의 눈물겨운 ‘대통령 찾아 구만 리’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우린 이겨낼 거야!”
“많은 것들이 두렵고 무서운” 자폐 장애인인 칸(Khan)이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에게 외부 세계와 접촉하고 소통하는 일은 두려움 자체입니다. 소음과 색깔에 과민하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하는 등의 평범한 관계 맺기에도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지요.

성장기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돌봄과 교육열에 힘입어 그는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능력을 기릅니다. 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생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허브 제품 판매원으로 일하던 중 미용사인 싱글맘 만디라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샘을 키우는 만디라는 어린아이 같이 순진하고 해맑은 영혼을 지닌 칸을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어느 날 불쑥 결혼해달라는 칸의 장난 같은 말을 무시하던 만디라도 아이처럼 맑고 거짓 없는 그의 모습과 애정에 마음을 열게 되지요. 칸은 무슬림이고 만디라는 힌두교도인데도 말이지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 어느 날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지금껏 세계는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었다면, 이제 9·11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영화의 대사처럼 칸의 동화 같은 스토리도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미국사회의 무슬림 혐오와 분노의 허리케인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칸의 가정을 강타합니다. 밝고 활달하던 아들 샘이 무슬림 혐오의 희생양이 된 것이지요. 아들을 잃은 슬픔과 울분을 만디라는 칸에게 쏟아냅니다.
“당신과 결혼하여 당신 성을 물려받은 게 이런 비극을 낳았어!”

무슬림들에게 흔한 ‘칸’(Khan)이라는 이름 때문에 샘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만디라는, 모든 미국 국민들에게, 심지어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내 이름은 칸이며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하라고, 그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칸을 매몰차게 몰아붙입니다. 만디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가슴에 새긴 칸의 눈물겨운 ‘대통령 찾아 구만 리’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대통령의 집회 일정을 따라 다니던 어느 날 그가 군중 속에서 외친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오인한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조사와 구금 생활을 겪게 됩니다. 이 와중에 방송기자 지망생들의 도움으로 그의 무고함이 보도되면서 그는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지요. 게다가 누명을 벗고 풀려난 직후, 지난 여정 중에 만난 흑인소년이 사는 마을이 허리케인으로 수몰 위기에 처했단 뉴스를 보고 지체 없이 달려가 구호활동을 벌이는 그의 헌신적인 모습이 보도되면서 그는 일약 스타가 됩니다.

마침내 아들의 살인범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날려 보낸 만디라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 칸은 만디라의 만류에도 끝까지 대통령을 만나려 합니다. 그는 과연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요?


칸이 좋아하는 노래 “우린 이겨낼 거야”는 50~60년대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주제가(a key anthem)로 널리 불렸던 곡으로,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우리 대학가에서도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라는 제목으로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포크 가수 조앤 바에즈(Joan Baez)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이 노래는 본디 감리교 목회자이자 복음송 작곡가였던 찰스 틴들리(Charles A. Tindley)가 작곡한 가스펠송이었습니다. 인도에도, 그리고 이슬람교에도 똑같은 노래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슬람교도인 칸이 자신을 따뜻이 맞아준 마을의 교회에서 흑인 개신교도들과 함께 부르는 “우리 승리하리라”는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이름은 칸>의 주인공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자페 장애인입니다. 그런 그가 외부 세계와 타인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은 순진함(innocence)과 진심(sincerity)어린 선의입니다. 안개에 휩싸여 천상의 도시처럼 보이는 샌프란시스코를 보여주려 이른 새벽 만디라를 깨우는 것도,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마을이 허리케인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가는 것도, 온갖 시련에도 기어이 대통령을 만나려 하는 것도, 모두 그가 순진함과 순수한 선의로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방식으로 읽혔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비장애인인 저 자신이, 우리가 상실해 가는 능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뱀과 같은 슬기로움’(wise as serpents)은 없을지 모르나 ‘비둘기와 같은 순진함’(innocent as doves)으로 끝까지 선의를 잃지 않고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는 칸의 잔상이 오래 남은 까닭입니다.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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