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드는 창가에서 미우라 아야꼬를 만나다

부활의 계절에 미우라 아야꼬를 떠올립니다. 우리에겐 <빙점>이란 소설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제게 그녀는 무엇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간 여인입니다. 척추 카리에스, 대상포진, 결핵, 직장암, 파킨슨씨병 등을 달고 살았지만 오히려 “내가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 뿐, 오히려 병으로 신앙과 소설 쓰는 즐거움을 얻었습니다”라고 고백하던 분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일화가 있지요. 동네에 구멍가게를 냈는데 가게가 손님으로 넘쳐납니다. 하도 정직하고 친절하게 물건을 팔았으니까요. 하루는 남편 미우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거의 없대. 저 건너 가게는 아예 곧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더군.”
이 말을 듣고 그녀는 파는 물건의 종류를 줄여서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했다지요. “그 물건은 건너편 가게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스물다섯 살 처녀 때에 결핵으로 13년간 요양생활을 했답니다. 요양원에서 그녀는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는데 세례를 받을 날짜가 결정되던 날의 이야기가 <길은 여기에>라는 수필집에 나와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의 세례는 7월 5일로 결정되었다. 내 병실은 내과병동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배균하고 있는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과병동은 깨끗했는데 중환자실은 좀 더러웠다. 벌레가 갉아먹은 더러운 기둥이나 곰팡이가 슨 벽이 방안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그 방에는 나보다도 더 중환인 50세쯤의 농촌 부인이 마른 몸으로 누워 있었다. 내 침대에서는 크레졸 냄새가 유달리 독하게 났다. 나는 병동 담당부에게 물어 보았다.

“이 침대에서 누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지요?”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내가 그리고 옮겨지기 몇 시간 전에 60여 세 되는 부인이 생애를 마친 침대였다.
“기분이 나쁘지요? 금방 임종한 침대라서.”
얼굴은 검지만 유순하게 생긴 담당부가 측은한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 죽지 않을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아마 이 병원 중환자의 병실에서 사람이 죽지 않은 침대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야말로 옛날의 내가 여기에서 죽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이 성서의 말씀대로 예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로서 다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죽은 침대야말로 앞으로의 내 요양생활에 어울린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박명철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