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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텃밭에도 봄이 오고 있나요?
[105호] 2011년 04월 06일 (수) 옥명호 @

옥명호의 시네마레터 - 인생의 한파, 관계의 겨울을 지나는 이들에게

영화는 톰과 제리 부부를 중심으로 친구들의 삶을 사계(四季)로 나누어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반전도, 클라이막스도 없이 런던의 한 중년 부부와 그 친구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목격’하는 느낌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10점을 최고라 할 때, 현재 본인의 행복점수는요?”
“1점.”
“1점이라…, 행복해질 여지가 많네요.”
“숙면 외에 또 바라는 게 있다면요?”
“다른 인생….”

잔뜩 지치고 불만스런 표정으로 병원을 찾은 불면증 환자와 상담사가 주고받는 대화 내용입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은 ‘다른 인생’을 원한다면서도 “변하는 건 없다”며 굳은 표정으로 돌아섭니다. 그이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가정을 꾸리고 다른 관계를 맺는 삶일 터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계절>은 씁쓸하고 쓸쓸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때로는 인생이 참 잔인해.”

병원 상담사 제리가 친구에게 한 말은 분명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순이 넘었음직한 톰과 제리는 “평화로운” 가정을 일구며 살아가는 금슬 좋은 부부입니다. 남편 톰은 토목 지질학자로, 제리는 병원 상담사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가까운 주말농장을 찾아 텃밭을 일굽니다. 요리하기를 즐기는 톰과 다정다감한 제리의 가정에는 친구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아들 조이는 독립하여 주말이면 가끔 부모님을 뵈러 들르곤 하지요.

제리의 집을 ‘평화롭고 아늑한 도피처’처럼 여기며 좋아하는 메리는 제리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로, 실패한 결혼과 몇 차례 잘못된 선택의 상처로 힘겨워하며 제리 부부를 자주 찾아 의지하려 합니다. 퇴직을 앞둔 켄은 톰의 친구로 휴가까지 내서 기차를 타고 톰을 만나러 오는데, “내 곁엔 아무도 없어. 외로움밖에 없지”라며 고독 속에서 사회에서도 뒷전으로 밀려나는 자기 처지를 비관합니다. 메리와 켄은 피차 외로운 처지이지만, 메리에게 다가가려는 켄과 달리 메리는 켄을 벌레 보듯 피하고, 메리는 조카뻘 되는 조이를 마음에 두고 다가가려 합니다.

영화는 톰과 제리 부부를 중심으로 친구들의 삶을 사계(四季)로 나누어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반전도, 클라이막스도 없이 런던의 한 중년 부부와 그 친구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목격’하는 느낌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불안정해 보이고 수선스러운, 그러면서도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며 친구의 아들에게까지 작업을 거는 메리의 모습은 보는 이의 연민을 자아냅니다. 어느 날 조이가 연인 케이티를 데리고 오자, 케이티의 생기발랄한 미소에 견주어 메리의 굳은 낯빛과 케이티를 질투하는 냉랭함에선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에 다다른 영화는, 한때 제리 부부의 가족이길 바랐으나 결코 가족이 된 적 없는 메리의 외롭고 낮고 쓸쓸한 처량함을 돋을새김합니다.
“대화 상대가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여긴 참 평화로워요.”

초췌해진 얼굴로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메리는 환대받는 케이티와 달리 이젠 친구축도 못 되는 ‘불청객’만 같습니다. 그런 그가 그 집 식탁에서 한 줌 평화를 맛볼 수 있을지요. 톰과 제리, 아들 조이와 연인 케이티, 상처한 지 얼마 안 된 톰의 형 로니 그리고 메리가 함께 둘러앉은 식탁 위로 묘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그 “평화로운” 식탁에서 메리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황량한 겨울 텃밭 같은 얼굴은 섬처럼 홀로 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짐 브로드벤트(톰), 루스 신(제리), 레슬리 맨빌(메리) 주연 / 마이크 리 감독 / 2011년 3월 24일 개봉
자연의 계절처럼 삶에도, 관계에도 사계절이 있을 터입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여 겨울 지나면 봄이 오지만, 삶의 계절, 관계의 계절도 그처럼 순환하는 걸까요? “대화 상대가 있는 게 축복”일 정도의 외로움은 어느 정도일까요? “곁에 외로움밖에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생명의 빛깔이라곤 찾기 힘든 겨울 텃밭을 보듯 영화는 우리네 인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연민을 안겨 줍니다. 런던의 추운 겨울이 지나면, 톰과 제리가 가꾸는 주말농장엔 봄이 찾아올 터입니다. 그러면 메리와 켄의 인생에도, 그들의 얼어붙은 가슴에도 봄꽃이 만발할 날이 올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봄꽃이 허드러지는 지금, 당신의 가슴 한켠엔 꽁꽁 언 겨울이 계속 되고 있진 않나요? 이제라도 새로운 해, 다른 인생을 희망하고 계신가요?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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