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되시면, 아니 시간을 만드셔서라도 조선 말기의 지식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를 엮어서 만든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 박석구 편역, 창비 펴냄)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선생은 유배지에서 자식들을 향해 멸문지화를 당하여 출세하는 길에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사람됨을 더 뚜렷이 함으로써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고, 멀리는 가문의 부흥을 꿈꾸라고 가르칩니다.


이미 몇 백 년을 앞서서 살아간 당대의 지식인이 진심으로 꼬장꼬장하게 교훈하는 가르침이 오늘이란 시간에도 큰 울림이 되어줍니다.
1803년 정월 초하루에 보낸 편지에서는 선생의 마음과 기품이 더 잘 드러납니다. 이 편지 한 부분을 남해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띄워드립니다.


(…)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글과 편지로 수없이 권했는데도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예악에 관해 하나도 질문을 해오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셈이냐? 너희들이 내 말을 이다지도 무시한단 말이냐? (…)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 폐족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으로서 배우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 되고 말지만 폐족으로서 배우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도리에 어긋나 비천하고 더러운 신분으로 타락하게 된다.


선생은 또 “내가 유배생활에서 풀려 몇 년간이라도 너희들과 생활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가정하면서 상상의 가닥을 펼칩니다. 행실을 바로하고 책을 읽고 연구하며, 농사도 지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벗과 소중한 교제도 가지면서 즐거이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맺습니다.


(…) 비록 폐족이라 하더라도 안목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다. 이렇게 한두 해 세월이 흐르다보면 반드시 중흥의 여망이 비치게 되지 않겠느냐? 이 점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여라. 이런 일조차 하지 않을 것이냐?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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