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식인의 슬픈 현대사

미국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날 대학 박문규 학장을 만났습니다. 40년 넘게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세상이 나아가야 할 길에 해답을 제시할 수 없어 슬펐답니다. 다행히 오랫동안 믿어온 기독교에서 그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그를 만나 우리의 슬픈 현대사에 대해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역사에서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사실의 연대기적 서술이나 사회과학적 분석만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종교적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최근 ‘하나님의 뜻으로 본 한국정치사’를 출간한 박문규 학장의 말이다. 40년 넘게 사회과학을 공부한 정치학자임에도, 종교적 진실을 찾아 나선 이유는 거기에 우리 슬픈 현대사의 뜻과 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의 땅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좀 할 수 있었던 특혜를 누린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생각해요”한다.

모국을 떠나 남의 땅에서 오랫동안 살게 되었지만, 한 번도 한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고향의 냄새는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가 미국 땅에서 바라본 한국의 현대사는 어땠을까.


# 4월 혁명

여러 차례의 민주화 운동 중에서, 박 학장은 4·19를 가장 ‘기독교적’ 혁명으로 꼽는다.
“1960년 4월 19일에 경무대 앞에서 발포소식이 전해졌어요. 학생 시위대에선 당연히 경찰의 무기고를 습격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끝까지 평화적 방법을 고집한 거지요. 미국의 라틴 루터 킹 목사가 비폭력적 저항을 이야기하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불과 10년 전에 민족상쟁의 비극을 겪고, 북진통일이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여지던 호전적 분위기였다. 당시 학생들이 이런 평화주의를 유지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다. 종속적이라 여겨졌던 한국 국민이 자발적 참여로 진리를 만들었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에서 다시 표출되었다.
그러나 박 학장이 가장 ‘기독교적’으로 꼽는 4·19에 기독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현대사의 슬픔이다. 그는 “참과 거짓이 싸울 때 기독교가 참의 편에 확실히 서지 못한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 한국 교회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발생했을 때, 박 학장은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문을 연 개혁의 시대를 맞아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뼈를 깎는 자기회개와 자기개혁이었어요. 그러나 이미 부패와 사치의 질서에 편승한 기독교는 그것을 할 능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데 기뻐하기 전에, 기독교적인 개혁의 방향을 제시할 때였죠.”

이 시기 교회는 점점 대형화되었고, 대중의 존경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세계선교를 한다고, 하나님의 촛대가 한국 교회로 옮겨졌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실제 속으로는 물량주의, 허세주의, 교권주의, 팀워크의 부재, 윤리성의 부족 탓에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 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한국 기독교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 하나님의 뜻

“한국 교회의 무책임과 비도덕성이 하나님을 슬프게 했음은 분명합니다.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부패와 불의에 쉽게 야합하고, 비윤리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한국을 엄청나게 사랑하신 것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바울 사도의 고백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해외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과 교세다. 그러나 이것은 뽐내기 위해 주어진 게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가 슬픈 현대사 속에서 겪은 수난의 아픔으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주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상처받은 자만이 사랑이라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가진 그 숱한 상처도, 슬픈 현대사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죠.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 남북 분단

누가 뭐래도 가슴 아픈 현대사의 정점은 남북분단일 것이다. 이에 박 학장은 “이 처참한 교회의 모습을 갖고 우리가 어떻게 북한의 핍박당하는 교인들 앞에 서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치학자 특유의 예리한 분석도 잊지 않았다.
“성급하게 통일을 추진하기보다는 북한이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 국제무대의 일원으로 인정받도록 도와주어야 할 단계입니다.”

박 학장이 섬기는 교회는 로스앤젤레스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교회다. 오랜만에 들린 고향에서의 일정도 잠시, 3일간의 빠듯한 일정을 뒤로하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지는 북한과 가까운 중국 심양.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그곳에 자매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젊은이들의 몫”이라면서도, 여전히 슬픈 현대사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이범진 기자
사진=김승범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