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위한 프로그램 개발한 신인식 박사

“종달새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새 이지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종달새도서관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의 소식, 희망의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저와 생각이 같은 분들은 저희들을 격려해주시고 물질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사람들 중에서는 핸디캡을 지닌 이들이 종종 있다. 이들이 지닌 핸디캡이 시련을 이겨내는 촉매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신인식 목사(55세·시각장애1급)도 앞을 볼 수 없는 핸디캡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좌절하기보다는, ‘장애’라는 한계를 넘기 위하여 도전한다. 특히 자신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한계를 극복하여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에 열정을 쏟고 있다.


# 37번째 시각장애인 박사… 시각장애인 위한 프로그램 개발

지난 2월 18일 신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중 37번째 박사가 됐다. 그가 다니던 대구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에서 ‘ARS 시스템 기반 시각장애인 웹(Web)사용성 모형개발’이라는 주제로 직업재활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신 목사가 강조하는 ‘웹사용성’은, 기존의 웹사이트를 시각장애인들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조 장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웹접근성 체계에 기반해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웹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전용서비스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요. 특히 웹접근성에는 장애인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것만으로 ‘컴퓨터, 인터넷 등을 사용할 줄 아네’라며 만족해버리는 것이 웹접근성 태도이지요. 쉽게 말해, 시각장애인 전용도로를 만들자는 것이 접근성이라면,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만들자는 것은 사용성입니다. 시간장애인용 자동차가 일반 자동차와 함께 다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이번 박사학위는 신 목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비전문가가 운영하여 정부가 지원할 수 없다던 ‘종달새도서관’이 이제는, 신 목사의 박사학위로 인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 목사는 웹사용성을 구현하기 위해 1994년부터 종달새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종달새도서관은 이용자가 도서관에 전화를 걸면 ARS 안내를 받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화기 버튼을 눌러서 글자도 입력할 수 있다.

 

웹 컨텐츠를 음성으로 바꾸어 전화기로 웹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게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오늘자 유명 일간지, 일간신문을 종달새도서관에서 검색할 수 있다. 특히 사진기사도 음성으로 생생하게 표현·설명하여 듣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다. 세계최초로 개발한 이 기술로 신 목사는 2008년 4월에 특허를 받기도 했다. 종달새도서관은 현재 하루에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고, 효용성이 인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종달새도서관은 아직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것이기에, 민간단체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도서관장이 도서관과 관련된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정부는 번번이 종달새도서관의 지원요청을 외면했다. 다행스럽게도 신 목사와 일면식이 있던 전 서울 중구청장의 도움으로 중구 복지센터 한켠을 무상 임대하여 종달새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종달새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새 이지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종달새도서관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의 소식, 희망의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저와 생각이 같은 분들은 저희들을 격려해주시고 물질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 주님께 의지했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

신 목사가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기까지는 그의 깊은 신앙심이 주요했다. 신 목사는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다. 경남 의령의 두메산골에 살던 신 목사는 4살 때 눈에 돌이 박혀 실명했다. 가난했던 탓에 11살이 되서야 대구의 미션스쿨인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광명학교에 입학했고, 학창시절 내내 껌팔이와 신문배달, 전화 교환원 등을 하며 생활했다. 특히 2년간의 전화교환원 기간에는 체력이 버티지 못한 채 결핵말기에 신경성 폐렴, 수면부족 등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신 목사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제 삶에서 주님이 계시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시고, 비전을 갖게 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하시고…, 매일의 생활이 간증의 소재인 것 같습니다.”

한편 신 목사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장애인 자녀를 위한 조기 교육 기관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 가정에서 자녀 교육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가 시각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와 열등감이 생깁니다. 더군다나 부모가 일을 하여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유대관계는 더욱 떨어지지요. 장애인 자녀를 위한 조기교육센터에서는 부모님이 왜 장애인인지, 장애인이라도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인식시켜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종달새도서관 운영과 조기교육센터, 앞으로도 무척 바쁠 것 같습니다. 하하, 주님이 함께하시면 이 모든 것 이룰 수 있겠지요.”


편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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