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를 본 그이에게 부활이란 말은 상상 속의 파랑새입니다.
중년에 접어들 무렵 누룩처럼 스멀스멀 퍼진 암세포 덩어리들이었죠. 갑상선에 퍼지는 암세포를 제거하고 유방도 일부 절개했습니다. 아마도 그이는 그때 한 번 죽었을 겁니다. 여인네로서의 삶을 포기했으니까요. 6년간 조마조마하며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한 끝에, 그래도 지금 당장은 죽지 않겠구나 하며,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아보리라 다짐했습니다.


남은 ‘짐’ 어서 벗어버리겠다며 부랴부랴 막내딸 시집보내고 남편과 “전원주택에서 살까. 친구들도 만나야 하니까 도시와는 그리 멀지 않으면 좋겠어” 라며 행복한 황혼여정을 계획했습니다. 그간 아내를 업고 다니며 병수발해온 남편도 “그래. 이제는 목돈 넉넉히 갖고 남은 인생 즐깁시다. 1년만 기다려요”라며, 사우디 건설 일을 자원하여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이에게 또다시 불청객이 찾아들었습니다. 담도암 5기, 의사는 이미 간은 손댈 수도 없고, 폐와 목까지 번진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도 타국에 계신데 어머니에게 대충 둘러대자고 담합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왜 모르겠습니까? 이제는 원망만 생깁니다. 긍정적인 생각만 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 어느 강연자도, 병문안와서는 고통도 하나님이 주는 선물이니 지금을 견디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말하는 구역 식구들도 원망스럽습니다. 자기 집 버려두고 주말부부를 자처한 채 엄마 병수발하겠다며 들러붙은 자식들을 보며, 그이는 이제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제 꼬라지를 보세요. 전 그저 순탄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요. 저 좀 그만 때리세요. 저 좀 그만 때리시라고요!”
그러던 중에 어느 목사님이 그이를 찾아왔습니다. 막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별다른 얘기 없이 잠시 기도만 했습니다. 하루, 이틀, 그렇게 한 달째 그이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오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그이의 마음도 이상하리만큼 평온해집니다.

1시간도 넘는 거리를 잠시 기도해주려고 매일 찾아오다니…, 그이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구면도 아닌데 이렇게 매일 찾아오시고, 감사해요. 목사님덕분에 이제는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어요. 힘드실 텐데 더 이상 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병 나으면 찾아뵐께요.”
그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셨는지요. 당신이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같은 자녀인 저도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런 당신이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렇게 찾아오는 겁니다. 왜 아무 말도 안하고 기도만 하고 가냐고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고 싶은 바람이지요.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은 하나님의 딸이에요. 그리고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 세상 떠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하나님 품으로 갈 테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세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젊거나 늙어서나 항상 하늘에 소망을 두시고,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에요.”
이제 그이는 더 이상 짜증내지 않습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먼 산만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믿지 않는 첫째 딸에게 함께 죽음을 준비하자며 하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죽음을 목전에 두었거나 죽지 못해 살아있는 믿지 않는 이나 믿는 이들에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해되지도 않는 성경교리를 인용하여 “하나님의 뜻이네” 하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말로 위로한 채 심방헌금이나 요구하는 교회에 하나님은 이런 말을 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다오.”


주님, 2000년 전 당신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와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입을 막고 마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양 포장하지 않길 원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여 하늘소망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슬픈 자들과 더불어 슬퍼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편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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