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으로 시작했으나 절망이 된 부분, 용기로 시작했으나 만용이 된 부분, 필요로 시작했으나 욕심이 된 부분, 사랑으로 시작했으나 무관심이 된 부분 등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삶에도 무서운 패혈증이 생겨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의학의 시작은 세균과의 전쟁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세균에 의하여 일어나는 염증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비인후과 영역에서도 세균과 바이러스는 다양한 염증성 질병을 일으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이염, 부비동염(축농증), 편도선염, 후두염, 기관지염 등이 그것이다.

항생제의 비약적인 발달로 대개 이비인후과 영역의 염증성 질환은 잘 치료되지만,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당뇨나 스테로이드 장기복용, 항암제 투여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단순한 염증이 구강, 인두, 기도, 식도 주위조직으로 퍼져 심각한 농양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염증은 급속도로, 또 광범위하게 퍼지기 일쑤여서 시간을 놓치면 패혈증이 생겨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치료된다고 해도 여러 가지 중대한 장애를 남기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구강 및 목 주위 조직이 괴사되고 고름이 고이게 되는 질병을 ‘심경부감염’ 혹은 ‘심경부농양’이라 부른다. 농양의 치료 원칙은 가능한 한 빨리 고름이 고인 부분을 열어서 고름을 빼내는 것이다. 고름만을 빼내고 환부를 씻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염증이 있던 주변의 괴사된 조직도 같이 제거하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괴사된 조직의 균들이 다시 염증을 일으키고 새롭게 농양을 만들 수 있다. 염증 주변의 괴사된 조직을 제거할 때는 꼼꼼하게 구석구석 긁어내야 한다. 충분히 넓게 제거하고 죽은 조직이 모두 제거되었는지 여러 차례 확인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출혈이 되는 건강한 조직이 나올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치료하면 염증이 언제 그렇게 심했을까 싶을 정도로 며칠 안에 금방 회복된다. 이처럼 괴사된 조직을 제거하는 것을 ‘창상절제술’(debridement)이라 부른다. 모든 외과 수술의 가장 기본적 시술이다.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의 경우에도 가장 먼저 받은 수술이 창상절제술이다. 총알에 의하여 괴사되고 염증이 병발한 조직을 긁어내어 몸속에서 패혈증이 오지 않도록 하는 수술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시간을 다투는 수술이다.

이 창상절제술은 몸을 고치는 데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삶에도 꼭 필요한 수술이다. 우리 삶에도 괴사되어 제거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소망으로 시작했으나 절망이 된 부분, 용기로 시작했으나 만용이 된 부분, 필요로 시작했으나 욕심이 된 부분, 사랑으로 시작했으나 무관심이 된 부분 등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삶에도 무서운 패혈증이 생겨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 삶에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균은 수도 없이 많다. 게으름, 사치와 낭비, 도박, 알코올이나 니코틴 혹은 마약 중독, 음란 탐욕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삶이 심각한 염증과 고름으로 위협 받게 될 때 창상절제술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창상절제술은 환자 스스로 할 수 없고 외과의사라야 할 수 있다. 우리 삶의 창상절제술도 마찬가지다. 환자인 우리들은 스스로의 삶을 수술할 수 없다. 한다고 해도 완전하게 구석구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 분만이 하실 수 있다. 그는 지금도 쉬지 아니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고름이 줄줄 흐르는 염증 부위를 치료하고자 창장절제술을 하고 계신다.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과감하게, 충분하고 넓게 하신다. 이때 고난의 칼을 혹은 뜨거운 소작기를 사용하신다. 아프고 뜨겁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시려는 게 아니라 소생하여 건강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라고 말했는데, 어느 책에 보니 “불꽃이 너를 다치게 못할 것은 내가 오직 네 찌꺼기만을 태워 네 금이 정제되도록 고안했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하였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이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위생상태도 불량하여 누런 코를 줄줄 흘리는 코흘리개와 귀에서 고름이 나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심경부 염증과 농양도 있었지만 제때 치료하면 약에도 잘 반응하여 쉽게 치료가 되었다. 요즘은 경제도 좋아지고 위생상태도 나아졌지만 심경부농양은 오히려 치료가 더 어려워졌다.


대개 당뇨나 면역결핍증이 근본 원인이거나 항생제 내성이 있는 원인균에 의한 염증이 많아 그 범위가 광범위하고 약이 잘 듣지 않아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으나 사회가 점점 죄악이 만연하는 지금, 하나님께서도 예전보다 더 힘든 창상절제술을 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최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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