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냥 뚫어지게 그 표지를 보고 있었다. 테이프로 입막음을 당한 그 예수는, 무엇인가 보는 듯 마는 듯 겨우 눈을 아래로 하고는 그 어떤 기력도 다 잃어버린 초췌한, 그러면서도 침통한 얼굴이었다.


며칠 전 인터넷으로 새로 출판된 책 광고물을 접했다. 그중에 제목과 표지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 책이 하나 있었다. ‘교회로부터 예수를 구해내기’(Saving Jesus from the Church)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이었다. 그 제목이 순식간에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라는 제도 안에서 얼마나 짓밟힘을 당하고 있기에 그를 교회라는 데서 아예 끌어내어 구출해야 한다는 제목을 달았을까?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를 생각하면 곧바로 공감할 수 있는 책 제목이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제목이었다. 오늘날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르고 온갖 추태를 다 부리는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운 행태를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라면, 공감을 자아내고야 말 책 제목이었다.


# 예수의 입

제목보다도 더욱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 책의 표지 디자인이었다. 책 표지는 흔히 보는 예수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예수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회색 테이프가 예수의 입을 완전히 봉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냥 뚫어지게 그 표지를 보고 있었다. 테이프로 입막음을 당한 그 예수는, 무엇인가 보는 듯 마는 듯 겨우 눈을 아래로 하고는 그 어떤 기력도 다 잃어버린 초췌한, 그러면서도 침통한 얼굴이었다. 예수의 입을 막는다는 것은 그의 급소를 찌르는 것이었다.


입을 막아 그를 침묵게 하는 것은 그를 완전히 무력게 하며 말씀 그 자체를 억압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책 표지 그림을 보게 된 내 마음은 그지없이 괴로웠다.
과연 누가 예수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인가? 누가, 그 누가 그에게 입막음의 테이프를 붙인 것인가? 무엇 때문에 그의 입을 밀봉한 것인가? 비통한 물음을 던졌다. 

 

# 우리의 입

예수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언가 자신에게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인가 자기를 방해하고, 어떤 것이건 자기에게 장애가 된다고 여겨 예수의 입을 테이프로 막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권력관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해 중국 당국이 인터넷을 통하여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널리 주고받는 것을 검열하겠다고 한 것이나, 최근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 때 인터넷 전제를 차단한 것은 모두, 인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권력층에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당국이 뭔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민의 입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독선 덩어리가 정치판에만 있지 않다는 데 우리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있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그 모든 고착된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를 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것에 교회가 재갈을 물리고도 있다. 우리의 바깥 사회 조건이든 우리의 생활 방식이든 그 어느 지점에 멈춰 있기를 거부하고, 쉼 없이 변화되기를 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것을 교회가 틀어막고도 있다.  

이 정황에서 우리는 비탄에 빠진다. 예수가 아무 말도 못 하게 그의 입에 테이프를 붙여 침묵시킨 다음, 교회들이 건들거리며 사방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방송 매체를 통하여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예수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해 관심에 따라 각색되어 나온 그들의 소리를 도처에서 내지르고 있다.

기독교는 그 무엇보다 예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에 귀 기울이기를 요청합니다. 목사의 입이 아닌, 연장자의 입이 아닌, 배웠다고 하는 자의 입이 아닌,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자의 입이 아닌, 예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그 '말씀'에 경청하기를 요청하는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교입니다. 온갖 사람들이, 온갖 데서, 온갖 짓으로, 온갖 말로 우리의 귀를 사로잡고자 야단법석입니다.


달콤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하면 웃기는 이야기판도 벌입니다. 제법 학자연하는 태를 부리는 데가 있는가 하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도 있습니다. 동색 동류의 패를 모으고 그런 부류가 그곳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는 각각 자신이 속한 교회 집단이 뭐라는 듯이 떠벌리며 자랑하기에 이릅니다.

 

# 예수의 ‘말씀’을 찾는 분별력

그 모든 쏠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솔깃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알아차리는 분별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말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그 말이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 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의 말씀을 자기식으로 바꾼 다음 '자기의 목회 철학'이니 '자기의 신념'이니, '자기의 확신'이니, '자기의 연구'니 하면서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지, 섬세하게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혼탁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을수록 분별 능력은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예수의 입에 테이프를 붙여놓고 그의 말씀을 봉쇄해버리고는 시정의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는 오늘의 교회에 감연히 맞서, 우리는 그 테이프를 떼어놓아야 한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입문을 열고 '말씀' 할 그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예수의 입을 막아버리고는 시장 바닥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오늘의 속된 교회를 바라보며, 우리는 더욱 그의 말씀을 사모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그 말씀에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한다.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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