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1.4.7 수 01:45
 
> 뉴스 > 칼럼 > 송수용의 DID로 신앙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검은 백조
[103호] 2011년 03월 09일 (수) 송수용 @

2011년 골드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탈리 포트먼의 <블랙 스완>을 보게 되었다. ‘백조가 블랙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주인공 니나는 뉴욕시립 발레단이 ‘백조의 호수’를 새로운 컨셉트로 만든 작품 ‘블랙스완’에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블랙스완’은 기존의 ‘백조의 호수’와 전혀 다른 스토리 구조를 가진다. 쌍둥이 자매인 백조와 흑조가 등장하며 한 왕자를 두고 사랑의 경쟁을 벌이다 결국 흑조가 왕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자 백조는 자살하게 된다.

니나가 주인공으로 발탁된 이유는 그녀의 우아함과 순수함이 백조와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인공이 백조와 흑조를 1인 2역으로 동시에 소화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니나는 흑조가 갖추어야 할 관능미와 야성적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니나는 주변 단원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시달린다. 불안감이 커서 완벽한 흑조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들고, 끝내는 자신의 대역이 자기를 몰아내려는 환상 속에서 그녀를 찌르지만 결국 그녀가 찌른 것은 자기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완벽한 흑조의 연기를 완성해내고 “Perfection”이라 외치며 죽는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니나의 불안감이 그녀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망, 그러면서도 현재 이룬 것마저 무너질지 모른다는 초조함. 이 두 가지 마음이 내게도 늘 있다. 무엇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내 마음 속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살려는 마음과 끝없는 욕심에 끌려 다니는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 검은 백조라는 이원적 존재감이 나에게도 늘 있는 셈이다. 백조의 순수함과 흑조의 관능성이 내 한 몸에서 경쟁하고 있다.

영화를 다 본 뒤 깨달은 건 스스로 완벽성을 추구하면 안되겠다는 것이다. 완벽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완벽하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허무할 뿐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끝날 뿐이다. 보는 이들이야 눈에 보여진 아름다움의 완성으로 박수칠 수도 있지만 무엇을 위한 아름다움인가? 완벽성 자체가 목적이 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우상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하다. 백조와 흑조가 내 안에 함께 있다. 우리가 육체를 벗어날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한쪽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우리의 존재 양식을 이해하고 늘 겸손하게 나의 마음을 성령님께서 인도하실 수 있도록 내려 놓아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며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 않을까. 나를 비우고 깨끗이 하면 그 분께서 우리를 완벽하게 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송수용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표지 보기
“보석 같은 내용이 평정심 찾아줘...
위로를 건넬 작은 근거
시골길의 권서들
“감사나무 한 그루 분양할까요?”
산에서 농사짓던 목사
전지작업
컵라면 용기는 재활용이 안 된다고...
‘사람’이 담긴 놀이터의 사계절 ...
어떤 돈가스 책을 발견했는데 말이...
“하는 것과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