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성경공부 모임에서 ‘요셉의 용서’가 토론의 주제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요셉이 과연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지 않았었더라도,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을 그렇게 ‘쿨’하게 용서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토론의 시작이었지요. 자신의 성공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용서 여부가 결정된다면 순도 100%의 ‘용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 정도는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용서라는 거지요.

곧바로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로 삼은 유명한 이야기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를 품은 거지요. 사랑 없이는 용서가 있을 수 없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사랑에 이유가 따른다면 그 순간 이미 사랑이 아니듯, 용서에도 조건이 따른다면 진정한 용서가 아니겠지요.

평화와 금욕을 추구하는 크리스천들이 모여 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아미시 마을에 끔찍한 총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초등학교에 한 남자가 난입해 10명의 아이를 총으로 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습니다. 총기사건이 비일비재한 미국도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이후였습니다. 아미시 주민은 아이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고, 그의 가족들까지 위로했습니다.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왜 용서한 걸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또 진정한 용서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연극을 통해 그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요?

※ 연극 ‘아미시 프로젝트’
2011년 3월 5일 ~ 4월 10일(평일 8시/ 주말·공휴일 3시, 6시/ 월 쉼)
서울 신촌 더 스테이지(02-312-9940)

이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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