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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된 미래'냐 자유의지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103호] 2011년 03월 09일 (수) 옥명호 @

 성공한 미래가 그려진 인생 설계도를 원하는 이들에게

   
설계도에 따라 정치계의 최고 자리를 향해 순조롭게 달려가던 데이빗에게 전해진 엘리스의 결혼 예정 소식은 ‘편안하고 안온한 설계의 삶’에 젖어 있던 그를 다시 한 번 깨어나게 합니다. 마침내 다시금 그는 설계된 운명을 거역하기로 결심합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있을 순 있어. 그게 내 바람이야.”


과거는 회상하고 미래는 상상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건 오직 현재입니다. ‘지금 여기’의 시간만이 실재(實在)하는 시간이며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을 보면, “하나님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실 뿐,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가운데 함께하실 수는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의 운명을 궁금해 하여, 가정하고 상상하며 염려하다가 불안에 사로잡히기까지 합니다. 점술의 역사가 오래고 점집이 여전히 성업 중인 이유를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요. 만일 미래가 낙관적이고 빛나는 성공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현재의 삶은 오로지 장밋빛 행복일까요? 반대로 불행한 결말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면, 미구에 닥칠 그 불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현재는 고통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컨트롤러>는 자신의 미래가 ‘미래 조정국’(the Adjustment Bureau)이라는 기구에 의해 ‘설계’되어 있음을 알게 된 젊은 정치가가 그 운명을 거부하고 사랑을 선택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없나요?”

대통령 후보로까지 오르내리는 데이빗은 자신의 인생 행로가 미래 조정국의 ‘설계도’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조정관’의 말에 강하게 항변합니다. 그는 ‘조정’(adjustment) 또는 ‘재설정’(reset)으로 이루어지는 철저한 통제 사회, 통제 인생에 맞서려 합니다. 대중 앞에 나서기를 열망하는 정치인인 그가, 장차 대통령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자신의 미래 설계도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미리 설정된 삶보다는 어찌될지 모르는, 설계도를 벗어난 삶의 문으로 기어이 뛰어들려는 무모함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 때문입니다. 액션을 표방한 이 영화가 로맨스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미래 조정국이 데이빗의 인생에 개입하여 재설정하려는 것은 그와 엘리스의 연애 관계입니다. 뉴욕의 작은 극단 소속 무용수인 엘리스의 미래 운명은 세계 최고의 안무가요 무용수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래 설계도에 따르면, 이들이 사랑을 포기하고 서로 제 길을 찾아 갈 때 자기 삶의 자리에서 각각 정치가와 무용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성공이 보장된 미래 설계도를 거부하고 자기 내면의 감정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는 데이빗을 저지하기 위해 미래 조정국은 “해머”라는 별명을 지닌 악명높은 조정관까지 투입합니다.

결국 조정관의 계속되는 망치질 앞에서 엘리스가 부상당하는 모습을 보며, 데이빗은 자신의 의지를 꺾고 설계도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설계도에 따라 정치계의 최고 자리를 향해 순조롭게 달려가던 데이빗에게 전해진 엘리스의 결혼 예정 소식은 ‘편안하고 안온한 설계의 삶’에 젖어 있던 그를 다시 한 번 깨어나게 합니다. 마침내 다시금 그는 설계된 운명을 거역하기로 결심합니다. 설계도를 벗어난 미지의 문 앞에서 데이빗은 엘리스에게 묻습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있을 순 있어. 그게 내 바람이야.”
이제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들의 사랑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이 영화의 원작자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도 예고된 미래를 따르지 않고 미래의 운명을 거슬러 도전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성공이 예정된 인생 설계도라면 그대로 한 번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토록 ‘안전하고 보장된’ 미래야말로 누구나 바랄만한 운명 아닐까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주인공은 자신이 범죄예고시스템이 보여주는 범죄자 운명임을 알고 이를 거부하려 싸우지만, 데이빗은 오히려 정치가로서 최고 반열에 오르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은 왜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악을 가능케 하는 것도 자유의지이지만, 사랑이나 선이나 기쁨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 또한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자동 기계의 세계는 창조할 가치가 없습니다.”(<순전한 기독교>, 86쪽에서)

C. S. 루이스의 말대로, 조정 또는 재설정되는 운명의 설계도에 따라 사는 삶이란 “자동 기계의 세계”이자 하나님이 설계하시지 않은 세계, 사실상 ‘악의 세계’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기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말한바 “반은 영이며 반은 동물”인 인간은 “양서류”(amphibians)로서, ‘영원의 세계’와 ‘변화하는 시간’을 오가며 날마다 자유의지를 시험하는 문 앞에 서야 할 운명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 <컨트롤러>, 맷 데이먼(데이빗 노리스)/ 힐러리 블런트(엘리스) 주연, 조지 놀피 감독, 2011년.

옥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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