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드는 소리▶도심의 빌딩을 배경으로 돋아난 새싹


사순절 기간이 지나면 곧 부활의 계절이 오겠지요. 죽음 뒤의 부활을 바라보시는 주님을 생각하면, 죽음 뒤에 있을 하나님의 ‘인생평가’를 기대하고 살아오신 한 분이 떠오릅니다.


그이는 열 남매 중 일곱째입니다. 올해 예순 중반의 나이, 남매들 중 막내가 오십 줄이니 조카들도 꽤 성장했습니다. 조카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면 남매들은 온통 자식들 이야기입니다. 조카들 가운데는 농사짓는 조카도 있지만 의사도 있고, 약사도 있고, 교수도 있고, 변호사도 있으며, 장사 깨나 하는 조카사위도 있습니다. 자식들 이야기는 대개 힘깨나 쓰고 돈깨나 버는 이야기를 듣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이는 썩 잘난, 그러니까 돈이 많든지 부러움 살 만한 직장에 다니든지 하는 자식이 없습니다. 두 아들이 있지만 큰아들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시골 교회 전도사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으며, 작은아들은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몇 해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난하더라도 뭐 하나 부러울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남매들 가운데 유일한 예수쟁이입니다.

누가 결혼이라도 하는 날이면 모두들 모여 자식 자랑으로 시끌벅적합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그이는 그저 웃기만 합니다. 남매들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자랑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 신앙 좋다’는 이야기가 다른 형제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잘못하면 웃음만 쌀 게 뻔합니다.

며칠 전 또 한 조카의 결혼식장에 찾아온 그와 만났습니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여느 때처럼 다른 형제들의 자랑을 들으며 웃음만 짓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뭐라고 한마디 하시지 그러셨어요?”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는 예의 그 환한 웃음으로 말했습니다. “나중에 다들 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알게 되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내가 왜 그렇게 예수 믿자고 했는지, 아무 말 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던 내 심정도 말이야….”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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